구조조정·분사소식에 침울
그래도 간간히 들려오는 수주소식에 희망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그동안 고생했데이. 나가서도 몸 조심하그라." 김준식(33·가명)씨의 어깨를 대우조선해양 선배들이 토닥였다. 김씨는 올해의 마지막 날, 6년 동안 목에 걸고 다니던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정문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정류장으로 나서는 길에 옥포조선소 야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차창 너머로 동전만하게 보이는 골리앗 크레인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갓 입사해 거제에 내려와 조선소를 처음 마주한 날이 떠올랐다. 여의도 초고층 빌딩 만한 배들을 보며 압도 당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씨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은 최고 인기 있는 직장이었다. 그 해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합격 통지서를 내밀었던 삼성그룹도 마다하고 거제도로 내려왔다. 신입사원 시절엔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든다는 꿈에 들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이 휘청거리면서 올 해 내내 고민하던 김 씨도 결국 사직서를 내고 새 직장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회사에 남은 동료들이나 선후배들도 새해를 앞둔 만큼 어려운 상황도 긍정적으로 이겨내 보자는 분위기"라며 "내년부터 한 달 동안 무급휴직을 시작하는데 '연봉은 10% 깎였지만 한 달 쉬니까 손해 보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서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위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술 빨리 깨는 약 한 병 주이소."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선박 용접을 하는 이용구(48세·가명)씨는 올해 마지막 출근 길 슈퍼마켓에 들러 생전 입에도 안대던 숙취 해소 음료를 챙겨마셨다.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연말인데도 제 마음대로 술 한잔 하지 못하는 처지다. 지난 10월 회사가 6개로 쪼개질 것이란 분사 계획이 발표 된 이후 조선소 야드는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송년회 같은 건 생각치도 못하는 직원들 탓에 울산 동구는 밤만 되면 유령도시처럼 썰렁해진다. 성과급 지급도 미뤄지며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사측은 약정임금의 185% 성과급 지급안에 동의한 직원들에게만 주겠다고 했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사측도 지급을 미루겠다고 27일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게시판에서는 "연말에 가장 노릇이라도 하게 우선 받고 보자"는 측과 "노동조합을 믿고 기다려 보자"는 측 간 다툼도 일고 있다.
그나마 세밑 매서운 바닷바람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간간이 들려오는 수주 소식이다. 이 씨는 "올해 많이 떠났지만 아직까지 직원 수가 2만명이 넘습니더. 대마불사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지예. 2~3년만 견디면 지금보다야 나아지지 않겠습니꺼"라고 내다봤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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