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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도 포기하고 거제 왔는데…오늘이 마지막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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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의 12월 31일, 주니어 직원들 희망퇴직하고 거제도 떠나는 날
구조조정·분사소식에 침울
그래도 간간히 들려오는 수주소식에 희망

"삼성도 포기하고 거제 왔는데…오늘이 마지막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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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그동안 고생했데이. 나가서도 몸 조심하그라." 김준식(33·가명)씨의 어깨를 대우조선해양 선배들이 토닥였다. 김씨는 올해의 마지막 날, 6년 동안 목에 걸고 다니던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정문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정류장으로 나서는 길에 옥포조선소 야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차창 너머로 동전만하게 보이는 골리앗 크레인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갓 입사해 거제에 내려와 조선소를 처음 마주한 날이 떠올랐다. 여의도 초고층 빌딩 만한 배들을 보며 압도 당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씨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은 최고 인기 있는 직장이었다. 그 해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합격 통지서를 내밀었던 삼성그룹도 마다하고 거제도로 내려왔다. 신입사원 시절엔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든다는 꿈에 들떠 있었다.
12월 내내 옥포조선소 기숙사에서는 집으로 보내는 이삿짐 택배가 쏟아져 나왔다. 김씨처럼 기숙사 생활을 하던 주니어급 직원들이 속속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달부터 5년차 이상 대리ㆍ과장들에게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1월부터 11월까지 정규직 2000명이 회사를 떠난 뒤였다. 회사는 "주니어급들도 희망퇴직 할 수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휘청거리면서 올 해 내내 고민하던 김 씨도 결국 사직서를 내고 새 직장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회사에 남은 동료들이나 선후배들도 새해를 앞둔 만큼 어려운 상황도 긍정적으로 이겨내 보자는 분위기"라며 "내년부터 한 달 동안 무급휴직을 시작하는데 '연봉은 10% 깎였지만 한 달 쉬니까 손해 보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서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위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술 빨리 깨는 약 한 병 주이소."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선박 용접을 하는 이용구(48세·가명)씨는 올해 마지막 출근 길 슈퍼마켓에 들러 생전 입에도 안대던 숙취 해소 음료를 챙겨마셨다.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연말인데도 제 마음대로 술 한잔 하지 못하는 처지다. 지난 10월 회사가 6개로 쪼개질 것이란 분사 계획이 발표 된 이후 조선소 야드는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중공업은 내년 4월까지 '조선ㆍ해양ㆍ플랜트ㆍ엔진'은 그대로 두고 '전기ㆍ전자' '건설장비' '로봇ㆍ투자' '그린에너지' '서비스'를 개별회사로 분리하기로 했다. 이 씨는 "평생 현대중공업 타이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해왔던 사람들인데 심정이 어떻겠냐"며 "개인적으로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하고 출근하더라도 술 마신 티조차 낼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했다.

송년회 같은 건 생각치도 못하는 직원들 탓에 울산 동구는 밤만 되면 유령도시처럼 썰렁해진다. 성과급 지급도 미뤄지며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사측은 약정임금의 185% 성과급 지급안에 동의한 직원들에게만 주겠다고 했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사측도 지급을 미루겠다고 27일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게시판에서는 "연말에 가장 노릇이라도 하게 우선 받고 보자"는 측과 "노동조합을 믿고 기다려 보자"는 측 간 다툼도 일고 있다.

그나마 세밑 매서운 바닷바람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간간이 들려오는 수주 소식이다. 이 씨는 "올해 많이 떠났지만 아직까지 직원 수가 2만명이 넘습니더. 대마불사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지예. 2~3년만 견디면 지금보다야 나아지지 않겠습니꺼"라고 내다봤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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