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로 돌아온 배우 이병헌
"조희팔 희화화 걱정돼 출연 망설여"...입체적 묘사 탁월하지만 혼자 돋보여
균형 잃은 연출에 늘어지는 이야기 "최선 다했으니 결과 연연 안해"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 '마스터'는 선악의 경계가 분명하다. 진현필(이병헌)은 희대의 사기꾼. 원네트워크라는 금융회사를 설립하고 화려한 언변과 인맥을 앞세워 수조 원의 사기를 친다.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투자자 3만여 명을 속여 4조원을 가로챈 조희팔을 연상케 한다. 그를 추적하는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정의의 사도다. 외압 등 악조건에서도 소신껏 수사를 밀어붙인다. 상반된 두 인물의 속고 속이는 추격전은 영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 그런데 긴장은 크지 않다. 초반부터 대립 구도를 펼치지만 좀처럼 갈등이 증폭되지 않는다. 두 인물에 대한 묘사가 엇박자로 흘러 이야기가 갈수록 늘어진다.
이병헌(46)을 1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휴플레이스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불균형에서 비롯된 위험부담을 알고 있었다. "견고한 비리의 온상처럼 그려서 그것이 무너져 내릴 때 통쾌함을 전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잘 어우러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캐릭터를 해석할 때부터 애를 먹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해하니까 촬영이 끝났더라. 상식적인 범주에 있지 않은 인물이다. 어떤 큰 잘못을 저질러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만족을 채운다."
이병헌이 생각한 진현필은 악행의 끝에 다가가는 인물이 아니다. 돈에 미친 남자다. 사기를 치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성격이자 사기꾼으로서 터득한 생존법이라고 봤다. "욕심이 나는 배역이긴 한데 매력적인 포인트가 애매했다. 조희팔과 같은 인물에게 경쾌함이 어우러져도 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배역을 맡기까지 한 달여를 망설였다. 고민 끝에 사기꾼이라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줘도 된다는 확신을 했다."
세세한 표현 덕에 진현필은 꽤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김재명에 대한 묘사 등이 이에 미치지 못해 독보적으로 튀고 만다. 그래서 속도감을 내세우는데도 이야기의 흡수력은 떨어지고, 마지막 충돌에서도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상영시간이 143분이나 돼 지루하게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이병헌의 연기는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다. '내부자들(2015년)'의 안상구에 비견될 바는 아니다. 안상구는 잔혹한 정치깡패지만 허술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이런 면면이 정의로운 길로 들어서는데 설득력을 부여한다. 진현필은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나 '제5원소'의 조르그(게리 올드만) 같은 매력적인 악역이지만 어떤 지원사격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병헌은 인터뷰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흥행이) 안 되면 실망스럽겠지만 어쩌겠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최선을 다 했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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