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팀은 21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핵심 수사대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재계의 뒷거래 의혹을 겨냥한 ‘뇌물죄’ 규명이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재단 출연 및 비선실세 특혜가 대통령의 권한·지위에 기댄 강요의 결과라고 보고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를 적용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비자발적으로 설립된 두 재단에 출연의무를 강제함으로써 재계를 갈취했다는 논리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을 댄 삼성이 박 대통령과 직거래한 내역이 있는지, 최씨 일가에 대한 최소 50억원대 특혜지원이 그가 ‘비선실세’임을 알고 이뤄진 것인지 여부다.
삼성전자가 작년 8월 최씨 소유 독일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승마선수 지원 명목 200억원대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구도 핵심 난제 중 하나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지분) 확보 갈증을 풀어 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에 권력의 입김이 닿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검팀이 파견검사 주포 윤석열 수석검사, 한동훈 부장을 뇌물죄 수사에 배치하고, 공식 수사개시에 앞선 20일의 준비기간 중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대외담당 사장 등 삼성전자 관계자를 사전 접촉한 것 역시 해당 수사가 특검 성패를 좌우할 요소로 인식한 것으로 읽힌다.
특검팀은 필요한 경우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삼성 등 재계와 접촉한 모든 행적을 훑을 계획이다. 대통령을 겨냥한 계좌추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설립 전후로 수사 대상을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작년 7월과 올해 2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이 부회장은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비선실세 최순실(구속기소)씨의 존재를 올해 초에야 알았다고 말했지만, 그 진위가 의심받고 있다.
작년 3월 삼성은 정유라 특혜 지원 의혹을 받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에 올랐고, 두 달 뒤 통합삼성물산 계획을 내놨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 재계 총수 7명을 독대하며 재단 설립 지원을 당부한 건 합병안 가결 주총 일주일 뒤다. 최씨 조카 장시호(구속기소)씨가 이권을 노린 의혹을 받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맡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작년 5월 26일 합병계획을 발표하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공식 자문기관이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비롯한 국내외 의결권자문기관들은 줄줄이 반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이 전무했던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해 총수일가는 득을 보고, 일반 주주는 물론 2대 주주 지위에 있던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21%)조차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7월 10일 홍완선 전 본부장 등 내부인사만 참여한 투자위원회를 거쳐 3시간 반 만에 찬성으로 결론냈다. 결국 같은달 17일 합병계약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며 찬성률 69.53%로 가결돼 통합 삼성물산은 실질적인 지주사로 자리매김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 및 시행규칙,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등에 따르도록 되어있다.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정하기 곤란할 경우 의결위가 이를 대신한다. 투자위 결정 당시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가치는 당일 종가기준 삼성물산(지분율 11.61%) 1조1676억원, 제일모직(5.04%) 1조21000억원으로 제일모직 비중이 더 컸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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