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이 드러난 정치권력과 재계의 유착관계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부녀 2대에 걸쳐 계속된 악연이라고 할 수 있다. 4.19혁명 직후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면서 법안 하나가 만들어진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부정하게 돈을 번 기업인들을 처벌하는 '부정축재처리법'인데 이 법을 실제 집행해 재계를 압박한 것은 1961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5.16 군사정부였다. 수많은 기업인들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수사를 받거나 구속됐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정부가 원하는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간신히 풀려났다. 당시 재계의 통일된 의사창구를 만들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이번에 해체 논란이 일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당시와 현재 상황에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들은 1961년에 비해 규모가 수십 배 커졌고 전 세계에서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명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졌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며 크기가 커졌다고 해서 저절로 글로벌 선진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의 한국 상황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들이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나 정치권력이 특정 목적을 위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현상이다. 기업이 권력에 기대어 뭔가를 도모해보려는 정경유착 역시 전형적인 후진국의 행태다. 이번사태 때문에 향후 세계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더 커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기업경영은 결과로서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재벌기업 총수들은 처음에는 "대통령이 추진한 사업의 취지에 찬성하여 자발적으로 낸 돈"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을 바꿨다. 이들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전 세계적으로 국민들을 낯부끄럽게 만들고 한국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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