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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그들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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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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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 두 번째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11월 4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중략)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단어 하나 고치지 않은 대통령 담화문 말씀 그대로다. "검찰 수사에 협조", "성실하게 임하겠다" 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3주 만에 이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 됐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대통령은 1차 담화에서도 거짓말을 했다.
이 상황은 충격적이다. 대통령 담화문은 대국민 사과를 위한 것이다. 정치인의 정견 발표문이 아니다. 예컨대 대선 후보시절의 공약집과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 실제 이루어낸 일을 비교해서 공약대로 안됐다고 해서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는 것과는 사안이 다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일수록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한다. 김종 전 문화체육부 차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소개해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김기춘은 그러나 "최순실을 본 적이 없다. 통화한 적도 없다. 대질 심문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둘 중의 하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종 전 차관은 수영선수 박태환 협박 논란과 관련해서도 녹취록이란 증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거짓말을 계속 했다. 재판정에서의 거짓말은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다.

영화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내용인데,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지위가 높을수록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잘한다. 탈북자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국가정보원 수사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사안을 기소한 검사조차도 "증거가 조작된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다. 중국 외교부가 공문을 통해 '국정원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됐음'을 입증해줬는데도 그랬다. 심지어 간첩조작 사건 당시 국가정보원의 총책임자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사안 자체를 모른다"고 잡아뗐다.
이 영화 최고의 블랙코미디 장면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자백'에서도 등장한다, 일본유학생 간첩단사건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국장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직접 쓴 자필 메모(조작 간첩에 유리한 진술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메모, 본인이 사인까지 했다)를 부인한다. 이 영화를 만든 최승호 PD가 메모를 보여주니까 "모른다" "기억에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CJ그룹을 압박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된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음주운전 논란 때도 거짓말을 했다. 본인이 운전을 했으면서 "대리운전을 시켰다"고 잡아뗐다. 이번에도 본인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이 없었다면 혐의를 과연 인정했을까 싶다. 최경희 전 이대총장,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은 정유라 입학과 관련해 숱한 거짓말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그 사회가 거짓말을 용인하는 정도와 비례한다. 부패로 얼룩진 미국 정치에서조차 가장 큰 욕은 "거짓말쟁이(liar)"다. 아무리 정적(政敵)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 만은 피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너와는 화해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현직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발단은 '도청'이었지만 닉슨 대통령이 사임을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거짓말'이었다.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저들의 거짓말,우리 사회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그 기억력을 가장 무서워할 것이기에.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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