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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다니엘 하딩의 파리 오케스트라 서울 공연

최종수정 2016.11.18 11:16 기사입력 2016.11.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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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케스트라는 이미 하딩의 팀이었다

다니엘 하딩이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 [사진=김윤배(빈체로)]

다니엘 하딩이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 [사진=김윤배(빈체로)]


프랑스 명문 악단, 파리 오케스트라가 지난 15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에 이어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으로 통산 네 번째, 그리고 5년 만의 내한 공연을 했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방한 공연은 지난 9월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영국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이 맡았고, 협연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나섰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여행을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깊이는 정기 연주회를 위해 상주 공연장에서 일처럼 만날 때와는 다르다. 항공편과 투숙 호텔을 달리하며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장받으려는 노장 지휘자도 있다. 투어가 끝나고 와인에 흉금을 트는 관계가 되기에 서울은 괜찮은 도시다. 열정적인 관객 반응으로 지휘자와 악단 모두 고무된 마음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그들의 예술적 미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마흔 한 살 난 영국인 지휘자가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장이 되었을 때, 하딩을 오래 지켜본 관계자들은 정서적 유대감을 음악적 일체감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파리에서도 수월하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감독한 악단에서 음악과 사람을 위해 헌신한 진지한 자세 덕분이다.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에 안경을 쓰고 단원과 어울리는 모습은 200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얼굴과 체형에서 여전히 옥스포드 대학생 느낌이 난다.

 첫 곡인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는 익숙한 음악적 습관에서 벗어나, 새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는 변화된 사운드와 스타일을 보여줬다. 지휘자에게 수석들의 유연한 자세와 테크닉은 색채의 기복이 심한 곡의 특성을 표현하는 팔레트였고, 하딩은 기습을 노리는 검객처럼 단호하고 거침없는 비팅으로 곡의 출렁임을 증폭시켰다. 악단 구석까지 통제하는 일사불란함이 돋보인 대신, 지휘자의 개성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던 파리 오케스트라의 느긋함은 희미해졌다. 프랑스 축구 대표팀을 독일 감독이 통제할 때처럼, 하딩이 감독한 또 하나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연주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부드러운 곡 전개로 '바이올린 협주곡의 이브'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친숙한 작품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작품에 새 숨을 불어넣는 것이 협연자에게는 더 어려운 과제이다. 올해 마흔 아홉의 벨은 자신이 작곡한 카덴차를 넣을 만큼 의욕적인 자세로 고전에 도전했다. 데뷔 시절 연약하고 중성화된 이미지로 '유니섹스' 논란이 일었던 벨은 더 이상 없었다. 지휘를 겸업하면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조망하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고, 색다른 프레이징과 테크닉으로 이를 형상화했다.
 멘델스존 협주곡에서도 레가토로 선율적 아름다움을 처연하게 노래하기보다, 시종일관 활을 현에서 떼어놓지 않고 되도록 가깝게 붙여, 자신의 힘과 순발력을 극대화하는 스탠스가 독특했다. 강박에 약음을, 약박에 강하게 치고 나가 기존 연주에서 듣지 못한 소리를 만들어 냈지만, 그 소리들은 거칠게 들리지 않았다. 벨의 관록 덕분이었다. 자동차의 급정거를 연상시키는 2악장 루바토의 여유나 3악장 도입의 통통 튀는 플라잉 스타카토의 천진난만함이 독주곡에서도 격조 있게 이어질지, 그의 리사이틀 내한이 기대를 모은 대목이다.

 마지막 곡 베를리오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하딩과 파리 오케스트라가 지금 어떤 관계인지 더 분명히 드러났다. 2014년 오랜만에 다시 객원 지휘로 만날 때 하딩은 악단이 새 감독을 찾는지 몰랐고, 악단을 세게 몰아 붙였다. 새로운 형태의 다이내믹을 갈망하던 파리 오케스트라가 찾던 리더십이었다. 많은 연습이나 순간의 번뜩임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성실하게 창의력을 부풀리는 하딩의 요구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악단 특유의 기능과 만났다.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이어지는 목관 악기들의 테크닉을 중심으로 놓고, 악보에 근거해 깔끔하게 음형을 다듬어가는 하딩의 지휘에 거장성은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작품이라도 서로 다른 색깔을 풍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고 파리 오케스트라는 또 다른 발전 선상에 놓였다. 내년 가을 런던 심포니(LSO) 감독에 부임하는 사이먼 래틀이 언젠가 LSO를 그만 둘 즈음, 누가 그 자리를 이을 것인가. 하딩은 지금 파리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한정호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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