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지진이 일어났으니 머리를 보호해야 돼요. 근처에 베개로 머리를 감싸고 선생님을 따라오세요."
1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SK행복어린이집 파랑새반. 스피커에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는 방송이 나오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아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아이들은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선생님을 따라 비교적 재빠른 몸놀림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위급한 분위기에 몇몇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아이까지 생기자 이내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조금씩 굳었다. 선생님들은 우는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 안으면서도 다치는 아이들이 없나 신경을 썼다.
이날 이곳 어린이집에서는 민방위의 날을 맞아 실전을 방불케 하는 지진대피 훈련이 진행됐다. 69명의 아이들과 20명의 선생님들이 있는 이곳은 도심 대형 건물 2층에 위치했다. 선생님들은 지진에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지진 발생부터 건물 밖 대피까지 실감나는 지진 훈련을 펼쳤다.
1층으로 내려갈 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난간 손잡이를 꼭 잡고 내려갔다. 먼저 이곳으로 대피하고 있던 다른 층 직원들은 아이들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다치는 아이들이 없나 주의 깊게 살펴봤다.
원래 이곳 어린이집은 지진이 일어나면 위험 요소가 가장 적은 광화문 광장으로 대피해야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해 건물 1층 밖 화단으로 대피장소를 정했다. 대신 여러 명의 안전 직원들과 응급구호소를 배치해 아이들의 대피훈련을 도왔다. 90명 정도의 인원이 모두 이동하는데 8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안전한 장소로 대피했음에도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사전에 받은 안전교육을 착실히 이행했다. 이곳은 직장 어린이집이라 대피훈련 중 엄마를 만나는 어린이도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발견하고서도 잠시 멈칫 거렸지만 훈련을 위해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학부모 이만영(33)씨는 "아이가 훈련을 잘 받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면서도 "평소 어린이집에서 소방훈련을 잘 받아 요령을 잘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앞서 어린이 집에서는 훈련을 대비해 아이들에게 지진 시 대피방법 등 지진교육을 실시했다. 비교적 어린 5~6세 아이들이기 때문에 지진의 원인과 무서움 등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위해 영상 교육도 포함했다.
안소희 선생님은 "얼마 전 경주에서 실제 지진이 나 아이들 중에서도 지진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지진훈련에 참여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부터 20분 동안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지진대피 훈련이 진행됐다. 서울에서는 총 30여개 장소에서 군인과 경찰, 공무원, 주민 등 1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