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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퐁뻬제철소의 자부심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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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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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감행했다. 아내는 환갑을 넘기더니 주책을 떤다면서 극구 말렸다. 암튼 40일간 독일과 프랑스의 '철강이 쓰인 현장'을 찾아 다녔다. 한손에는 영어회화 책을 들고, 배낭에는 육포를 비상식량으로 챙겼다. 내심 현지 곳곳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라고 애써 위안했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동프랑스까지 두 번 기차를 갈아타면서 우여곡절은 시작됐다. 미리 예약한 2등석 좌석이 문제였다. 10칸짜리 기차의 지정 탑승구를 잘못 찾아, 8칸을 헤집고 겨우 도착한 내 좌석에는 젊은 유럽인이 앉아 있었다. 일어나라고 손짓까지 동원해도 젊은이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모른 체했다. 녀석은 분명 말귀를 알아들었으나 동양인을 깔보는 눈빛이 역력했다. 어쩌나 보려는 태도였다. 난감했다. 기차 승무원이 오고 나서야 오만불손한 행동은 해결됐지만 뒷맛은 엄청 불쾌했다.
동프랑스역에 도착해서야 동양인을 깔봤던 이유가 풀렸다. 당시 프랑스의 경제침체는 극한상황이었다. 활력이 넘쳤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역과는 달리 동프랑스역은 2인1조의 군인들이 역내를 경계할 정도로 삼엄했다. 가끔 알제리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주변은 걸인이 득실거렸다. 가무잡잡한 유색인들의 번득이는 눈은 여행객의 빈틈을 노렸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여유롭게 해외여행 하는 동양인의 등장에 어깃장을 놓고 싶었을 법하다.

다행스럽게도 파리 여행 안내자는 파리지앵이었다. 강희철 박사(66세). 그는 파리에서 35년을 살았다. 파리 곳곳을 잘 안다. 파리 대학을 다녔고 박사학위도 따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파리 지하철을 탔다. 지하 수 십 미터를 내려가야 하고 안내표식을 잘 봐야만 제대로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철도역사를 미술관으로 변신 시킨 오를레앙 미술관은 서울 역사와 큰 비교가 되었다. 귀족들의 전유물처럼 된 미술품을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한 프랑스인들의 발상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품격 높은 센 강변의 정취는 지금도 삼삼하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프랑스 노부부의 산책이다. 베이지색 버버리, 은발, 가디건 스웨터를 앙상블로 걸친 노부부는 하얀색 강아지를 앞세우고 산책에 나선 듯 했다. 저녁노을과 겹쳐 한 폭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플라뇌르" "우리도 백발이 되면 저렇게 유유자적 할 수 있을까?" 강박사의 독백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플라뇌르'는 인생의 황혼을 즐기는 성공한 사람들이란다. 옛날에는 강아지 대신 거북이를 앞세우고 다녔단다. 이처럼 여유로운 삶은 침체된 경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프랑스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곳의 건물과 구조물들은 모두 예술품 같았다. 고딕풍의 옛 건물과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에펠탑은 유독 필자의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프랑스인의 자부심이며, '그랑되르(Great)'로 삼고 있다는 에펠탑에 근접해서 자세히 살폈다. 작은 동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FURGES ET USINES DE POMPEY.' 퐁뻬제철소 생산품이라는 표식이었다. 문득, 일본 간몬교에 신일본제철, 신호제강의 이름이 새겨진 사실과 베들레햄스틸의 철강재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쓰였다는 각각의 명패가 오래된 기억 속에서 튀어 나왔다. 그런데, 프랑스는 이미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에도 철강소재의 원산지를 밝히고 있었다. 코리아의 건축물과 구조물에 어느 회사의 철강재가 쓰였다는 표식을 본 적이 없는 철강인은 큰 발견을 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중국발 철강재의 무분별한 수입을 방지할 수 있는 실증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철장이의 눈에는 철만 보인다고,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조차 철강 산업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하는 필자는 애초부터 여유로운 인생을 즐기는 '플라뇌르'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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