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이주열 '핑퐁게임'…"금리 여력있다" vs "재정 톱클래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책 여력을 두고 미묘한 핑퐁게임을 벌였다. 경기회복을 위해 이 총재는 재정의 역할을, 유 부총리는 기준금리의 여력을 언급하면서, 재정·통화정책을 각각 담당하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수장이 서로 총대를 떠넘기는 모습이다.

유 부총리는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기준금리가 1.25% 수준인 상태라 아직 '룸(여력)'이 있다며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왔고 거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거꾸로 본다면' 국내 금리는 아직 여유가 있는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또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 "(금리 인상이) 1회 정도에 그친다면 한국은 (그 영향을) 통화정책으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통화정책을 운용중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에 금리인하 여지가 남아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유 부총리는 "단순 논리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라며 "금리 결정은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금통위가 알아서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이는 오는 13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을 끌고 있다.

금통위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통화 당국으로선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앞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이어 지난 6일 10조원 규모의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은 날 이 총재의 발언과 대비를 이룬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금융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며 "금융안정 리스크가 많이 퍼져 있어 (통화정책의 추가 완화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선진국의 금리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에 대해 "선진국이 제로금리까지 간 것은 경기 침체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라며 단순비교에 선을 그었다. 오히려 그는 "정부가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재정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라며 재정정책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또 저출산 고령화 문제 대응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기적 플랜을 계속 밀고 가는 모멘텀을 만들고 싶다"고 언급했다.

경기회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할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수장이 서로 상대측의 정책 중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경기회복을 위한 총대를 떠넘기는 미묘한 모습으로도 읽힌다. 이는 그만큼 국내 경제상황이 좋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추경, 재정보강, 금리인하 등을 연이어 실시했음에도 경기부진이 이어지며 양측 다 추가 보완책이 마땅치 않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