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광기 속에 떠돌다, 76년전 오늘 타계한 천재 유대인 지식인의 꿈


벤야민이 꾼 꿈은 우울이었을까, 몽상이었을까, 아니면 꿈에게 자기 자신을 오롯이 내준 것이었을까.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벤야민이 꾼 꿈은 우울이었을까, 몽상이었을까, 아니면 꿈에게 자기 자신을 오롯이 내준 것이었을까.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이렇게 미래는 암흑 속에 놓이고 선한 힘들은
나약하네. 이 모든 것을 넌 보았지
네가 괴롭힐 수 있는 몸을 파멸시켰을 때”

- 브레히트의 시 ‘망명자 발터 벤야민의 자살에 대해’ 중에서



일생 글을 썼고, 발표했고, 썩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유대인 학자는 나치의 독재로부터 쉼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간신히 국경을 넘고, 그곳이 점령되자 또 한 번 국경을 넘으려는 찰나 세관에 난민 신분으로 억류된 그는 세관의 출국 협박을 사형선고라 받아들이고 몰핀을 삼켜 스스로 죽음을 맞았다. 오늘은 그가 죽은 지 76년 되는 해이고, 나치는 사라졌지만, 세계 각국에서 난민은 끊임없이 쏟아져 대륙을 헤매고 있다. 떠도는 사람들, 그 무리에 섞여 불안에 끝내 잠식당한 학자 벤야민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쓰이지 않은 것을 읽는 것이 독서


인쇄된 활자 너머의 의미를 바라보는 눈이 벤야민에겐 있었다. 이것이 그를 독보적인 학자의 길로 인도한 재능이자 종생 그의 삶을 불행으로 몰고 간 저주일 줄 그는 알았을까. 그는 책 한 권을 읽어도 그냥 읽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독서란 행위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경험하고 그것과 자신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독서는 쓰이지 않은 것을 읽는 것이다.”


그저 활자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암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들어가서 그 대상과 활자 사이의 관계를 부지런히 설정하는 일이 그에겐 독서였던 셈. 이를 ‘알레고리’라고 본 벤야민은 그 관계가 원만하기보단 인위적이고 필연적이기보단 퉁명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변태(?)성은 연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지인들의 빈축을 샀다.


“벤야민은 상대 여성이 다른 남자와 살고 있거나 그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만 (상대에게)매력을 느꼈다”


그의 절친한 벗이자 철학자인 게르숌 숄렘의 회고에 따르면 도무지 보통남성의 정서와는 궤를 달리한 이상형에게 벤야민은 매력을 느끼고,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리 망명시절, 국립도서관에서 파사젠베르크를 구상 중인 발터 벤야민

파리 망명시절, 국립도서관에서 파사젠베르크를 구상 중인 발터 벤야민

원본보기 아이콘

기대와 성취의 경계를 오롯이 즐긴 사내


유대계 부르주아 계급 집안의 2세로 태어난 그는 하녀와 가정교사에 둘러싸여 부유한 유년을 보냈는데, 그의 추억 속 경험 또한 범상치 않은 일화가 됐다.


“유년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때면 선물 자체가 아니라 내 손이 양말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겐 한없이 황홀했다. 선물 자체에는 기쁨이 없었다.”


이는 훗날 벤야민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파리에서 연구에 몰두했던 ‘파사쥬(Passage)’로 이어지는데, 건물 사이를 통과하는 길고 개방된 통로 공간을 지칭하는 파사쥬를 놓고 벤야민은 양쪽에 소속되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언제든 양쪽으로 수렴될 수 있는 철학적 공간성을 두고 문지방 영역(Schwelle)이라 규정했다.


양말 속으로 손이 들어간 그 짧은 순간 느꼈던 희열, 그는 선물에 대한 기대와 선물을 확인한 후의 성취보다 그사이의 미묘한 틈을 발견하고 비집고 들어가 거기에 들어앉았다. 이념의 대립이 치열했던 1차 대전 시기를 지켜보고 살아낸 청년의 몸과 마음은 전쟁의 광기를 각각의 이데올로기로 포장해 격돌하는 와중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절친한 지기였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체스를 두고 있는 벤야민(오른쪽)

절친한 지기였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체스를 두고 있는 벤야민(오른쪽)

원본보기 아이콘

금수저에서 비정규직 취준생으로


부르주아 아버지는 벤야민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을 강권했으나, 스위스에서 갓 박사학위를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그가 생각한 독립은 기껏해야 출판사를 차리거나 골동품 중개상이 되는 정도였다. 1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찾아온 대공황은 벤야민 집안의 가세를 기울게 했고, 금수저 도련님으로만 살던 벤야민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 경제적으로 직업을 가져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그는 학자의 길을 선택하고 의욕적으로 교수자격취득논문과 번역활동에 매진했으나 전후 혼란기에 먹고사는 문제로 골몰하던 대중에게 그가 번역한 보들레르의 시는 사치에 불과했다. 교수자격논문도 탈락하자 그는 다양한 매체에 공격적으로 투고하며 문필가로 명성을 쌓아나갔으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부모에게 얹혀살았고, 이내 가세가 기울면서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을 두고 스스로 ‘난쟁이 꼽추가 되어간다’고 자조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독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해 앞서 언급한 파사쥬를 주제로 한 아케이드 프로젝트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를 꼼꼼하게 작업해 나갔다. 전쟁의 광기가 다시 한 번 유럽을 휘감고 있는 사이 그는 이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을 “전쟁과 경주라도 하는 기분”이라 언급하며 연구의 늪에 스스로를 던졌지만, 독일 군대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진군하자 그는 짐을 싸 들고 미국으로 가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는 피난민 대열에 합류한다.


스페인 국경이자 연안도시 포르부에 있는 발터 벤야민의 무덤

스페인 국경이자 연안도시 포르부에 있는 발터 벤야민의 무덤

원본보기 아이콘

죽음의 공포


독일군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의 지병인 심장병도 이기게 했는지 그는 병약한 몸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탈출, 스페인 국경 어귀 포르부에 다다랐다. 국경수비대를 코앞에 두고 괴테의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하던 그가 챙겨온 짐은 온통 원고들뿐이었다.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에서 세관에 붙들린 그와 일행은 이내 억류된 상태로 집단 출국시키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게 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마을 경찰서장은 벤야민에게 직접 ‘당신은 곧 게슈타포에 넘겨질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이미 파리에서의 혹독한 망명생활에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던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추격과 불안에 몇 번이고 붙잡았던 생의 끈을 이내 놓아버렸다.


이런 그의 죽음을 두고 사인으로 지적된 몰핀이 복용 또는 투여를 통해 체내에 들어갔다면 검시 때 나왔어야 했는데 어떤 약물도 검출되지 않았고, 피신 중에도 빼놓지 않고 챙긴 ‘역사철학의 명제’ 초고가 사라진 점 등을 들어 그가 스탈린이 보낸 스파이에게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AD


그는 “어떤 대상을 나의 용도에 의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내가 그것을 위해 대상화된다”고 말할 만큼 스스로를 주체로 강조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역사에 내놓기를 저어하지 않았다. 전쟁의 광기 속에 벌거벗은 채 떠돌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연구와 발표를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죽음 앞에 내놓은 그의 태도가 보여준 결기는 소외와 갈등, 불통과 강제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오늘 위에 가치재편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강제를 벗어나 스스로를 죽음에 내던진 그의 정신이 오늘까지 살아있듯, 우리도 수많은 강제와 명령 앞에 그만큼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을까 되물어본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