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총성이 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라 해야 옳으나 어감을 고려해 우리말 독음을 사용한다)이 차가운 플랫폼에 머리를 떨군다. 조선 청년 하나가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으니 곧 의사(義士) 안중근, '동의단지회'라고도 하는 동맹의 취지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그는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장(敵將) 이등박문을 사살했다. 나를 포로로 대우하라"고 요구했다.
무명지는 약지(藥指)라고도 한다. 로마인들은 무명지에 심장으로 이어지는 신경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병 고치는 손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자주 쓰이지 않아 깨끗한 손가락으로 인식된다(데즈몬드 모리스). 불교에서는 약사여래의 상징이다. 일본 고류사 미륵반가사유상은 약지를 구부려 원을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세우고 있다. 카를 야스페르스는 미륵불을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하며 영원한 모습의 표징'이라고 하였다(주강현).
안중근이 무명지를 끊은 지 30년이 지날 즈음, '만주일보'의 1939년 3월 1일자에 반도 청년 하나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어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나온 '삼강행실도(三綱行狂圖)'의 '석진단지(石珍斷指)' 대목을 보면 효자 석진이 앓는 아버지를 위해 칼로 무명지를 벤다. 대개 진심을 담아 피를 낼 때는 무명지를 택한 듯하다. 반도 청년의 혈서는 무슨 뜻인가.
이로써 이 나라 골수에 스민 친일의 시원이 참으로 깊고도 멂을 깨닫는다.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기어이 입학한 그 반도의 청년은 이등박문이 죽은 지 70년 뒤 같은 날에 권총에 맞아 세상을 하직한다. 이등박문은 일하러 갔다가 죽었지만 반도 청년은 부하들과 술을 마셨다. 시바스 리갈.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