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찍어둔 자칭 작품사진을 베란다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빽빽한 자작나무 숲을 찍은 흑백사진입니다. 의기양양 액자를 들고 거실을 맴돌다 급기야 안방까지 침범을 했습니다. 거실엔 액자를 달아 둘 한 뼘의 여유 공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안방도 피장파장이었지만 기어코 벽에다 못질을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이랬습니다. 지난 초여름 출장 때 일입니다. 충청도의 어느 마을 앞. 여럿이 모여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참내 답답하게 또 벽화를 그리네. 좀 여유롭게 하얀 벽지 상태로 두면 안 되나요. 벽화 말고 알릴 게 그렇게도 없어요?"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에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곤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애먼 문화관광해설사만 쓴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의 집에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을 한 꼴입니다.
이런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일까요. 전국의 담벼락에 울긋불긋 벽화가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 이런 벽화에서는 쉽게 관광객을 모으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먼저 깔려 있습니다. '낙서'에 가까운 유치한 만화나 조잡한 풍속화로 도배된 곳도 흔합니다. 마을 주민들끼리 다툼이 생겨 벽화가 훼손되어 방치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명물'이 아니라 '흉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시 안방. 못질을 포기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거실을 한 번 훑어봅니다. 출장 때 마주한 그 벽화처럼 지저분하고 답답합니다.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와 나의 욕심으로 가득 찬 벽입니다. 처음 이사 와서 느낀 '하얀 백지'의 여유로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두막 편지'라는 법정 스님의 책이 있습니다. 스님은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찾는다' 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모자라고 아쉬운 여백의 미가 있어야 우리 삶의 숨통이 트인다'고도 했습니다. 때로는 빈 공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동안 마눌님의 숨통을 조인 것을 하나씩 제거해야겠습니다. 필요 없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일(특히 집 벽에 하는 못질)은 치우고 버려서 여백을 만드는 일입니다. 작은 탁자, 찻잔 하나. 책 몇 권, 그것만으로 충만하도록 말입니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