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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만항재, 여름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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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주의보'에다 열대야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덥다. 달궈진 아스팔트와 시멘트건물 속의 도회지 한복판에 갇혀 지내는 여름은 힘겹다. 높은 습도와 훅훅 끼쳐대는 열기, 강렬한 뙤약볕은 그야말로 찜통 가마솥이 따로 없다. 지나는 사람마다 연신 '덥다 더워'를 연발한다. 손에 부채라도 들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열기는 밤까지 이어진다. 끈적끈적한 몸…새벽까지 잠을 설치기 일쑤다. 열대야는 순순히 수면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름의 초절정이다. 아직 여름이 끝나려면 이십여일이나 더 남았다. '피서(避暑)', 말그대로 더위를 피해 떠날 때다.
 우리 땅에서 '가장 시원한 곳'으로 간다. '만항재'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 영월이 만나는 꼭지점이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인 '함백산(咸白山ㆍ1573m)'의 턱밑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만항재를 넘는 414번 지방도로는 무려 해발 1330m다. 높이로 따진다면 '치악산'이나 '지리산' 임걸령, '북한산'도 발아래에 두고 있는 셈이다.

 만항재를 찾은날은 대구 달성지방의 수은주가 36.8도까지 치솟았다. 서울도 33도를 기록했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전국이 벌겋게 달궈진 날이었다.

 고한읍에서 만항재를 오른다. 700m고지에 있는 고한읍은 정오에 32도를 기록했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갈수록 온도는 내려간다. 고개 정상쪽에 운무가 밀려왔다. 낮은 목을 넘어온 운무는 순식간에 고개 정상을 빨아들였다간 토해놓고, 다시 빨아들이기를 반복한다.
 만항재 정상. 서늘하다 못해 소름이 오슬오슬 돋아날 정도다. 오후 1시 온도계가 22도를 가리킨다. 우리 몸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다. 대구와는 무려 14도 차이가 났다. 상쾌한 바람이 소나무를 뚫고 불어온다. 잘 정비된 숲길은 신선한 공기로 가득하다. 도회지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온도는 더 떨어진다.

 만항재의 주인은 봄, 여름, 가을 내내 피고 지는 야생화들이다. 만항재의 또 다른 이름은 '천상의 화원'이기도 하다. 여름날 숲에는 '동자꽃' '자주꽃방망이' '둥근이질풀' '노루오줌' '기린촌' '긴산꼬리풀' 등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등산의 수고 없이 쾌적한 숲길을 걸으며 야생화를 보는 것은 만항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만항재 위쪽은 낙엽송 군락이다. 쭉쭉 뻗은 낙엽송들이 마치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특히 운무가 자욱할 때 낙엽송길을 산책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만항재에서 태백으로 내려가는 한편에 정자가 있다. 두툼한 이불을 들고 온 사람을 만났다. 아예 잠자리를 정자로 옮긴 것이다. 여름이면 태백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어김없이 정자에 오른단다. 이곳에선 흔한 풍경이다. 천연에어컨이 돌아가는 자연의 품에서 하룻밤,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찜통더위도 없고 끈적끈적한 열대야로 잠 못드는 밤은 더더욱 없다. 딴세상 이야기다. 만항재는 지금 22도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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