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는 마음을 다치고도 말없이 물속에 발을 내놓았다 봄이 왔다가 간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질서 물에 풀어진 발가락들이 강 건너편으로 가지 않고 발목 근처에서 제 집을 짓는다 당신이 오면 뭐라도 좀 주고 싶었는데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당신이 지나가는 동안 발등만 문질렀다. 아주 멀리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을 애써 지우며 떠나는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많은 밤이 오직 물속으로만 가라앉아 있는 밤, 한꺼번에 날아오르던 연두 속 감춰진 수만 가지의 끝에 대하여 그 끝마다 이름을 불러 주던 밤, 그런 밤이 다 지나고 나면 비로소 한 가지가 새로 생겼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랬다. 물에 닿은 가지 끝에서 물방울이 생겨났다. 방마다 잠들이 가득하여 강을 수천 번 오갔다.
 봄이 가고도 끝은 생겨나지 않았다.

[오후한시]재워 주고 싶어/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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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봄이 가고 벌써 여름도 다 저물어 가는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다. 당신과 헤어진 지도 여러 해가 지났는데, 이제는 아주 가끔 당신이 그저 문득 떠오를 뿐인데, 당신이 왜 떠났는지 그런 건 차라리 아무런 상관도 없어졌는데. 길을 가다 모퉁이가 나오면 괜히 한번 뒤를 돌아보고 피식 웃으면서 뒤통수나 긁적이고, 그렇게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친구를 만나고 혼자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고 그냥 그러다 뒤통수나 또 한 번씩 멋쩍게 긁적이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래도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만은 저 한구석에 맺혀 떠나질 않는데, 그런데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도통 떠오르질 않고, 그래서 어떤 날은 밤을 꼴딱 새워 꼽아 보기도 했더랬는데.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 당신에게 꼭 주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아니 내게 그런 게 대체 있기나 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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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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