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정든 학교를 떠나서? 물론 아니다. 그런 눈물은 여자애들의 몫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처음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부모님은 학교에 오시길 꺼렸다. 이태 전, 벼락이 치듯 느닷없이 하늘로 떠난 형의 흔적이 너무 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범했다. 반에서 무슨 부장인가 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스스로 과거의 졸업식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와 나는 ‘코스’대로 난전 같은 운동장에서 사진도 찍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어쩌다 운동장에서 어머니와 헤어지게 됐고 한참 지나도 찾아지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헤어지면 찾기 힘들었다. 주위에선 친구들이 부모님, 선생님과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터덜터덜 혼자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도 나를 찾다가 혼자 돌아오셨다는데, 졸업식 풍경이 상처를 자꾸 들쑤셨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고부터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가 달래도 속수무책이었다. 6학년만해도 잘 울지 않는 나이다. 그런데 그 날은 나도 놀랄 만큼 울었다.
며칠 전 꿈에 외할머니가 나타나셨다. 나는 말했다. “할머니, 고마워요, 고마워요.” “뭐가, 뭘 고맙다고.” “그 때 저한테 주신 사랑이요. 그 사랑 때문에 제가 살아요. 가슴 속에 작은 사랑이나마 품고 사는 게 할머니 덕분이에요.” 할머니는 또 우셨던 것 같다. 나는 울지 않았다. 깨고 나서도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꿨나' 싶고, 한참 기분이 이상했다.
외할머니는 사실 외손자보다는 친손자를 더 아끼셨을 테고 그 후로 어른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뵙고 살았지만 그 날의 기억이 지나치리만큼 각인돼 있다. 사랑은 단 한 번이라도 많은 것을 덮는다. 그리고 씨앗을 뿌린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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