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순댓국은 이제 맛 볼 수 없게 됐다. 이 가사에 등장한 을지로4가 산림동의 전통 아바이 순대는 지난달 문을 닫았다. 30년 가까이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순댓국 먹기 위해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재료가 떨어지면 이른 시간에도 문을 닫을 정도로 성업 중이던 집이었다. 더욱이 올해는 유명 미식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어 발 디딜 틈도 없던 상황이라 폐업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그러나 식당의 의자에, 식탁에, 주방의 솥에, 도마에, 칼에, 심지어 무심한 듯 걸린 간판에까지 세월의 흔적 켜켜이 쌓인 노포(老鋪)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그 가게는 새벽녘부터 나와 순댓국 끓는 솥 지켰을 주인장에게는 일생을 바친 일이었을 것이고 건지 푸짐한 고깃국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었던 인근 철공소 노동자들에게는 수십 년 동안 쓰린 속을 달래준 영혼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그곳을 단골 삼아 매일 같이 머릿고기 안주 시켜 소주 잔 기울여 온 이들에게는 뭔가 인생에서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 영화를 누리다 변해가는 세상 따라가지 못해 저물어가는 것도 애달프지만 세파에 치여 어느 한 순간 불현듯이 작별을 고해야하는 일 역시 눈물겹다. 그곳에 쌓인 기억들은 이제 어디로 흩어져야 할까.
몇 년 전 한 후배에게 을지로에 순댓국의 강자 세 곳이 있는데 그 중 이 아바이 순대가 단연 최고라고 소개했었다. 선배라지만 딱히 뭘 알려주고 할 처지는 아니었고, 또 딱히 뭘 배우고 싶은 눈치도 아닌 듯해서 순댓국 잘 하는 집이나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면치레를 했다. 얼마 전 그에게 이 집의 폐업 소식을 알려줬더니 역시 하나둘 사라져가는 노포들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선배(先輩)라기보다 알량한 국밥 경험 몇 그릇 앞선 선배(先杯)에 불과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는 맛 볼 수 없게 된,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용기 북돋는 순댓국을 함께할 수 있었으니 아주 나쁘지는 않았으리라 믿어본다. 문을 닫은 청계천의 아바이 순대가 잠시 휴식기를 갖고 다른 곳에서 다시 누군가의 영혼을 덥혀주기를 기원한다.
김철현 디지털뉴스룸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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