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제 증상은 이렇습니다. 문득 그리스에 가고 싶어집니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인간 '희랍인 조르바' 를 만나러 크레타 섬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를 들으며 꼭 '여덟 시에' 떠나는 기차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리스에 가려는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위의 두 사람 모두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소설 속에서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누비는 프리마돈나인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나 에게해(海)를 떠올리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제 눈과 귀에 와 있습니다.
걔네들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하 '내 친구…')에 나옵니다. (같은 제목의 TV프로그램은 이것을 빌린 것이지요.) 물론 그 애들을 만나겠다는 소망 역시 그리스의 그것처럼 백일몽일 것입니다. 간다고 해도 1987년의 소년들이 여태껏 같은 모습일 리 없고 마을 역시 예전 풍경은 아닐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달려가고 싶습니다.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내 친구…'가 보여주는 순정의 시간이 그리운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가방에 넣어오게 된 짝꿍의 숙제공책을 돌려주러, 어딘지도 모르는 친구의 집을 찾아 숨이 턱에 차게 달려가는 소년을 만나고픈 욕심입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황토 길이 눈앞에 삼삼합니다. 공책 한권을 보물처럼 품에 안은 소년이 뛰어가던 지그재그의 언덕길입니다. 끝내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한 소년이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보고 섰던 좁고 어두운 골목길도 보입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당나귀가 힘겹게 지친 몸을 끌어올리는 길입니다. 거기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는 소년이 눈에 밟힙니다.
영화 탓입니다. 그곳에 가면 유년기의 '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그 영화. 하지만, '내 친구…'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들 기억의 퇴적층을 소상히 꿰고 있는 사람이 우리가 아직은 천진하고 무구(無垢)하던 시간의 지층(地層) 하나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떼어다놓은 것일 뿐이지요.
그 사람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 1940~2016) . 흔히 네오리얼리즘 혹은 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의 거장으로 불립니다만, 저는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가야 하는 여러 가지 길의 소실점(消失點)과 마음의 경계를 전방위의 예술작업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열흘 전쯤 그의 부음(訃音)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아마드와 네마자데는 지금 한없는 슬픔에 빠져있겠지요. 외삼촌처럼 다가와 자신들의 유년기를 불멸의 필름으로 남겨준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란 북쪽 지방에 대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 친구…'의 마을과 자신들의 안전을 확인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코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 감독이 떠난 것을 친구의 죽음처럼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바로 그 지진이 지나간 길의 여정을 담은 영화제목,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처럼 죽음 앞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사람의 길에 대해 밤새 이야기하겠지요. 그리고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돌아간 집은 어디일까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키아로스타미는 길의 예술가입니다. 그 길의 끝은 대개 하늘과 맞닿아 있지요. 고물 오토바이 한 대가 내는 소리가 소음의 전부인 길입니다. 가다가 올리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의 설경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눈길에 찍힌 트럭의 바큇자국이 수묵화의 선처럼 아름다운 길입니다. 구불구불한 길에 전봇대들만 심심하게 서 있는 길입니다.
공책 한권을 전하러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욕(無欲)의 길입니다. 순수의 길입니다. 사람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여름의 첫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가을의 마지막 날
그가 떠나간 길을 그려봅니다. 테헤란 시내 '서울로(路)' 같은 길은 물론 아닙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