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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특별전 ⑦]아르티가스와 충격적 조우, 평면을 벗어나 꿈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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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진석]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고대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은 대개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예술가들은 그림이나 조각 등 전문 분야에 따라 나뉘었다. 19세기 들어 고갱과 도미에 등이 조각에 손을 대면서 이 장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0세기가 되자 예술가들은 다투어 도예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작업은 매우 실험적이었고 다양했다.

호안 미로는 도예 분야에서도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스페인 예술가들을 선도했다. 미로는 2차원적 회화뿐 아니라 현대 미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조각 작품과 수많은 도예 오브제, 그리고 대형 도자 벽화를 제작했다. 조각적 도예 오브제, 기호와 선으로 장식된 도자 벽화는 유희정신으로 충만한 피카소의 작품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미로는 1940년대 초반부터 도예작업을 했다. 그가 도자기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와의 교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들은 1915년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 미로는 1920년대에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막스 에른스트, 피카소 등과 사귀었는데 이들과의 교유 역시 미로의 도예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로는 1942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아르티가스의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1944년 바르셀로나 근처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갈리파에서 아르티가스의 작업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가마 뒤편 곳곳에 흩어진 깨진 접시와 컵 등의 조각들을 보고 충격을 느낀다. 아르티가스와의 공동작업은 미로의 예술세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다. 미로는 이렇게 썼다.

"아르티가스의 작품을 통해 나는 내 작품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과 지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자기를 굽는 동안 불의 마술은 너무도 매혹적이었으며 나를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갈리파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인간적인 열기로 가득 찬 추억의 시간이었다."
다른 예술가들이 처음 도예작업을 시작할 때 이미 만들어진 형태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한 반면 미로는 처음부터 자신만의 형태를 빚기 시작했다. 도예작업을 위한 밑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식기, 소품, 건축장식 등 다양한 작품들은 미로의 회화적 상상력이 도예기법을 통해 작품으로서 성공에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미로는 1956년 파리에서 '화염의 대지'라는 주제로 도예작품 서른두 점을 전시한다. 파리 시민들은 이 작품들에 매료됐다. 미술비평가 자크 라세뉴는 이렇게 썼다. "살아 숨 쉬며 증식하고 있는 석화된 형태들의 숲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 느낀 인상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유약으로 뜨거워진 빛, 색채를 머금은 도자기의 광택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는가."

미로는 1955년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 건물 외벽에 벽화 두 점을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는 도자기 타일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1957년에 완성한 벽화는 '태양의 벽'과 '달의 벽'이다. 미로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알타미라 동굴의 원시벽화와 바르셀로나 박물관에 있는 초기 프레스코화, 안토니 가우디의 모자이크에 대해 연구했다.

1964년에서 1972년 사이에 하버드대의 도자벽화를 비롯해 벽화 다섯 점을 더 제작했다. 미로는 아르티가스와 함께 30년 넘게 작업하면서 도자 오브제를 400개 이상, 벽화 열다섯 점을 남겼다. 1981년에서 1982년 사이에 바르셀로나 시청을 위해 제작한 '여자와 새'는 시멘트 뼈대에 도자기 타일을 씌운 미로의 마지막 기념비적 작품이다.

'여자와 새'는 높이가 22m나 된다. 관객은 이 작품에서 미로가 제시한 주제, 곧 여자와 새를 볼 수도 있지만 스페인의 위대한 예술가 가우디를 떠올릴 수도 있다. 조각과 도예는 미로의 예술을 도시 한복판이나 공공장소로 옮겨 놓았다. 만남과 대화를 갈구하며 중개자 없이 익명의 대중에게 직접 자신의 예술을 공급하려는 미로의 오랜 꿈도 이루어졌다.




허진석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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