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가수 조영남씨 사건을 계기로 '대작(代作)'의 형사처벌 대상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2일 대법원 관계자는 "명의상 저작자와 실저작자가 다른 경우 이를 사기죄로 다룬 판례는 국내에서 찾기 드물다"고 말했다. 통상 대작·대필처럼 저작물의 저작자가 실제 창작 과정에 관여한 이의 이름과 차이가 있는 경우 문제되는 것은 저작권이다.

외견상 조씨를 저작권법으로 처벌하기란 어렵다. 조씨의 '화투 그림'은 송모(60)씨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조수'라는 명목으로 그의 작품활동에 동원됐다. 그러나 송씨는 그가 그린 작품이 조씨의 컨셉트에 기반한 '조씨 작품'이라고 인정했다. 저작자가 실제와 달리 공표된 경우를 처벌하려면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의 고소가 필요한데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대작 그림은 '사기죄'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상대방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얻으면 사기죄로 처벌된다. '조씨 작품'이라며 8년여간 판매된 그림의 규모는 확인된 것만 십수점, 억대에 이른다.

'조영남의 작품'에 지갑을 연 사람들을 피해자로 보기 위한 쟁점은 우선 그 그림이 '조수의 작품'인지, '원작자의 작품'인지다. 전자의 경우 검찰은 미국의 1990년대 판례를 토대로 범죄 구성요건이 갖춰졌다고 보고 있다.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중세시대 인물화 패러디 논란 관련 미국 법원이 콘셉트 제공 작가 대신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한 데 주목한 것이다. 작품마다 일명 '조수'의 관여도에 차이는 있으나 '조씨 그림'은 조씨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유명인사의 회고록·자서전이나 팝아트 작품처럼 창작의 구체적 행위 부분에 있어서는 대필·대작이 관행으로 여겨지는 등 컨셉트 제공자를 저작자로 볼 지는 미술계·법조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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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법적으로 조씨 작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곧장 사기죄로 처벌되지는 않는다. 저작자가 조씨가 아니라면 그 작품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필요한 탓이다. 이와 관련 한 부장판사는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검토해 봐야하겠지만, 조씨 작품이 아니라면 이를 돈을 주고 구매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저작자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러 쟁점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 대상으로 다룰 거리는 못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알려진 자산이나 수입 규모에 비춰 조씨가 그림으로 경제적 이익을 노릴 동기는 없을 것"이라면서 "윤리적·도덕적 비난을 떠나 형사처벌까지 필요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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