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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代父의 기념관…愛國 산교육장 될 것"

최종수정 2016.05.23 10:31 기사입력 2016.05.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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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재 이상설 선생' 내년 순국 100주기 맞아 재조명…각계 전문가 5人에게 듣는다

<보재 이상설 선생>

<보재 이상설 선생>


보재 이상설 선생(1870년~1917년)은 독립운동가이자 근대수학 교육의 선구자다. 순국 100주기인 2017년에 국가현충시설로 기념관이 건립되고, 한국독립운동사박물관이 마련돼 전국적인 추모와 역사적 재평가가 기대된다. 아시아경제는 보재이상설선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으로 사회각계 전문가들을 만나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과 앞으로의 운영에 대해 물었다.

이상설 선생은 어떤 분인가.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을 선도한 지도자다. 견지한 사상이 항일독립운동사의 주류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선생은 스물일곱 살에 성균관장에 올랐다. 근대 신학문, 국제정치, 법률을 공부했고 영어ㆍ불어ㆍ러시아ㆍ일본어를 구사했다. 1905년 11월 늑결된 을사조약 반대투쟁에서 처음 항일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조약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연이어 올렸고, 대중이 모인 종로에서 군중대회를 열어 민중항쟁을 선도했다. 1906년 8월에는 북간도 용정(龍井)에 처음으로 국외 민족주의 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했다. 이는 후에 명동학교로 정신과 인맥이 계승 발전돼 국외 민족교육의 모체가 됐다. 1907년 7월에는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정사(正使)로서 이준ㆍ이위종과 함께 밀파돼 구국외교 활동을 펼쳤다."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사행 후 미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1908년 7월 덴버에서 한민족 통합대회 '애국동지대표회'를 열고 미주 한인사회의 단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결성의 초석을 다졌다. 이듬해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는데, 특히 북만주 밀산(密山)을 개척해 해외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세웠다. 한편으로는 의병장 유인석과 함께 국내외 항일의병세력 통합을 시도해 1910년 6월 십삼도의군을 편성했다. 경술국치 때는 병탄 원천 무효투쟁을 위해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하고, 대한제국과 외교관계에 있던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정부에 선언서를 보내 병탄을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선생은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환ㆍ발전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1914년 연해주에서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 건립을 추진하고 정도령(正都領)에 선임됐다. 을사조약부터 1914년 1차 대전 발발 때까지 전후 10년간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연해주 등지에서 대중투쟁, 구국외교, 민족교육, 무장 의병투쟁, 병탄 반대투쟁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이상설 선생이 한국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과 역사적 평가는 어떤가.
박유철 광복회장 "선생은 1894년 한말의 마지막 과거시험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와 한성사범학교 교관 등을 지냈고, 1906년 중국 용정에 우리 민족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기관 '서전서숙'을 세웠다.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에서 이준, 이위종 선생과 함께 을사늑약 무효를 세계만방에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나의 조부 백암 박은식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지내고, 중국에서 '신한혁명당'을 함께 결성했다는 점이 그렇다. 신한혁명당은 1910년 국망 이후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국외 각 지역의 독립운동세력을 조직화하고, 무장력을 통합해 독립전쟁을 결행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다. 3ㆍ1독립운동 당시 국내로 조직원을 파견해 만세시위를 지도했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유철 광복회장

박유철 광복회장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전인 1914년에 이미 최초의 해외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에 선임됐다. 단체 설립만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은 미래를 내다본 식견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오래 살아서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해 민족의 지도자로서 더 많은 역할을 했다면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더 활발히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17년 마흔여덟 나이에 병사한 선생은 오직 조국의 자주독립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이그밀사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망국의 신하답게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침략을 폭로하고 우리나라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러시아에서 병으로 차마 감기지 않은 두 눈을 감은 선생은 그 순간까지도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이역만리의 고혼이 되고 만 것이다.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적을 쌓았지만 역사적 평가도 미진한 편이다. 내년 서거 100주기를 맞아 건립되는 이상설선생기념관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건립을 계기로 선생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가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이상설선생기념관 건립에 지자체가 참여하는 의의와 앞으로의 운영이 궁금하다.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충청북도가 낳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다. 헤이그특사, 서전서숙 설립, 최초의 독립운동기지 한흥동 건설, 성명회 활동, 권업회 창립 등 다양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한국 근현대 학문에도 크나큰 발자취를 남겼으나 우리는 헤이그 특사 세 명 가운데 한 명으로만 알고 있다. 충청북도는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이상설선생기념관 건립사업을 민선6기 도지사 공약사업으로 선정했다. 사업비를 확보하려고 국회와 중앙부처를 수시로 방문했다. 그 결과 지난해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총 사업비 87.7억원(국비 26.3억원, 지방비 43.9억원 기념사업회 17.5억원)을 확보했다. 올해 22.2억원으로 부지매입, 실시설계용역 등을 마치고 진천군,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와 합심해 내년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기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우리는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불굴의 인내와 희생정신으로 이 땅을 지켜내신 순국선열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우국충정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세에 전하는 역사적 책임과 의무가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광복한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일제의 국권 침탈이라는 치욕적인 역사적 오명과 이선생과 같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해 오신 여러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됨은 선생뿐 아니라,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던 여러 순국선열들을 재조명하고, 그 분들을 기리는 다양한 숭모사업 추진의 발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18년 건립되는 기념관은 선생의 다양한 삶과 업적을 널리 알리고 애국ㆍ애족ㆍ숭모정신이 깃든 산 교육장으로 활용돼 도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켜 줄 것이다. 전국 최고의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 구상은 물론 주변 인프라와의 연계방안 모색 등에 노력을 기울이겠다. 또 161만 도민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으로 만들어 신수도권 시대, 영충호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을 만드는데 앞장서겠다."

기념관 건립 이후 관리와 운영은 어떻게 이뤄지나.
송기섭 진천군수 "올해는 선생의 순국 99주기가 되는 해다. 조국 독립과 민족교육을 위한 위대한 행적과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충북 진천 출신인 선생은 구한말 한국 독립운동사의 거인이자 민족교육자, 근대 수학교육의 선구자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나마 널리 알려진 헤이그 특사로서도 먼저 떠올리는 인물은 정사(正使)이신 선생이 아닌 이준 열사다.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에서도 이승만과 박용만의 이름은 알아도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천군 행정의 책임자며 군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송기섭 진천군수

송기섭 진천군수


"우리 군은 선생의 독립정신과 유업을 선양하기 위해 다양한 숭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용정 등지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분투한 발자취를 되새기는 '청소년해외유적지역사탐방'을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도 여름방학 기간에 추진할 예정이다. 또 전통산학에서 근대수학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수학서 '수리'를 발간하고, '산술신서'를 집필하는 등 새로운 근대수학교육의 출발을 알린 선구자로서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4년부터 '보재이상설수학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한국방송공사(KBS)와 함께 제작ㆍ방영해 숭고한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보재이상설기념관건립사업이 지난해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 건립사업으로 선정됐다. 우리 군은 부지매입을 진행하고 있으며, 순국 100주기인 내년에 착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건립추진위원회와 협력하는 등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 기념관이 건립되면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와 면밀하게 협의해 관리운영 주체를 논의하는 등 운영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선생의 얼과 정신이 후세에 계승될 수 있도록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 것이다. 선생의 애국정신과 민족사랑의 뜻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길 당부한다."

기념관은 어떤 절차를 걸쳐 건립되나. 또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는 어떻게 유도할 계획인가.
이연우 공주대 객원교수 "'泣國, 泣家, 又泣己(나라를 잃어 나라가 울고, 집을 잃어 집도 우니, 내 몸 둘 곳조차 없어 이 몸도 같이 우노라).' 선생은 시에서처럼 쓰러져가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만리타국에서 20여 년 간 풍천노숙으로 독립운동을 선도한 구국의 지도자다. 그 뜻을 기리려면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을 통해 새로운 민족정기 구현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분단의 극복, 평화통일의 달성,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해소 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생의 역정과 정신을 다시 새겨 민족 부흥의 길로 나서야겠다."

이연우 공주대 객원교수

이연우 공주대 객원교수


"독립 운동기를 거치며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이 깨우쳐 준 교훈이 있다.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자주와 평화를 함께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선생이 해외를 순방하면서 일제의 침탈과 간악한 식민정책을 폭로하고 대한의 독립이 '세계평화'의 관건임을 설명하고, 한국의 '영세중립화'을 역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4년 12월 진천군의회의 중기지방재정계획 수립과 지난해 5월 공유재산관리계획의 승인 이후 보재이상설선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이 구성됐다. 충북도의 지방재정투자심사 승인을 받고 국가 현충시설 건립대상 사업에 선정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결산소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국비를 얻었다. 진천군의 기념관 건립부지 매입예산 등이 더해져 총 예산 87억7000만원을 확보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다. 언론사의 인터뷰, 좌담회, 간담회 등과 지자체의 행정지원 등이 동기부여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기념관 건립사업은 부지 감정평가와 건립 범국민추진위원회 구성, 설계 용역비 확보 등을 마치고 착공을 앞뒀다. 이달 중 건립 토지 등의 보상협의가 마무리되고 '보재공원' 조성 기본계획 수립과 기념관의 기본, 실설계 등이 확정되면 바로 삽을 뜬다. 기념사업회와 범국민추진위원회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2017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민ㆍ관ㆍ기업이 공동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해외 동포를 포함한 범국민운동과 세계화 추진 작업 등을 병행해야 하겠다. 전 국민이 참여하는 1인 1만원ㆍ1구좌 성금운동과 오는 9월 기념관 착공 예정행사 등도 전국적 참여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제2의 국민운동에 준하는 대국민축제로 진행해야 하겠다."

정리=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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