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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가즘'사회와, 지름신 권하는 정부

최종수정 2016.05.01 11:51 기사입력 2016.05.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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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낱말의 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포악한 구매의 화살이 꽂혀도 죽은 듯 참는 것이 장한 일인가. 아니면 카드나 마우스를 들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이래도 안 살래?'와 싸워 응수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안 사는 건 잠자는 것... 그뿐 아닌가. 잠들면 마음의 충동과 육체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무수한 지름의 소름을 없애준다. 득템이야말로 우리가 열렬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안 사는 건 잠자는 것! 잠들면 어쩌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괴로운 일이겠지. 이 세상의 쇼핑창을 벗어나 죽음 속에 잠든 때에 어떤 물건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대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세상의 불편과 모욕을 참겠는가. 지름신의 횡포와 가격의 오만함을, 좌절한 쇼핑의 고통을, 지루한 밀당과 안하무인의 소유욕을. 덕망 있는 사람에게 가하는 졸부들의 불손을 참을 수 있겠는가. 단 한장의 카드면 깨끗이 끝장을 낼 수 있는 것을 말이다."(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대사를 '지름신 스타일'로 살짝 매만졌음.)

사느냐 마느냐. 그 선택의 고독 앞에 선 햄릿이 바로 요즘의 '소비자'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질적인 번뇌에 모두 적용될 수 있도록 '작품 속의 대사'를 구성해놓은 듯 하다. 햄릿의 말을 살짝만 바꾸면 구구절절한 '지름신론'이 나오지 않는가.

지름신이란 말은, 풍자의 맛이 꽤 진하다. 지름은 무슨 뜻일까. '지르다'의 명사형으로 보인다. '지르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에두르지 않고 가장 짧은 길로 직행하는 것을 말한다. 지름이나 지름길 따위의 말은 여기서 나왔다. 둘째는 속어로 쓰이는 '골 지르다' '염장 지르다'의 뒷부분이다. 셋째, '불을 지르다'라고 할 때의 '지르다'이다. 넷째, '소리를 지르다' '고함을 지르다' 할 때의 지름이다. 다섯 번째는 '저지르다'의 의미다. '일을 지르다' '사고를 지르다' 할 때의 그 '지르다'이다. 지름신의 '지름'은 다섯 번째 의미를 근간으로 하면서 다른 의미들을 모두 포함하는 점이 특징이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지름신 부적. 30초만 바라보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진다는 게 게시자의 설명이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지름신 부적. 30초만 바라보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진다는 게 게시자의 설명이다.



지름이란, 해서는 곤란하거나 뒷수습이 어려운 일을 과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저지른다는 의미를 담는다. 그 지름에는 결행의 속도가 필요하고(직행), 나중에 골 지르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은 검불에 불지른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십상이며 겁은 나지만 악으로 깡으로 질러버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저지르는 게 바로 '지름'이다. '지름'은 무리한 구매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지름은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의 크기가 비대해있는데 비해,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비극을 탑재한 무리수인 점이 핵심이다. 세상의 많은 광고들과 물건들은 지름을 충동질한다. 온갖 좋은 말과 달콤한 권유로 욕망을 키워놓는다. 그런데 내가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은, 늘 욕망의 눈금에서 턱없이 모자란다. 물건 값과 욕망 사이즈의 갈등을 일시적으로 해결해주는 신비한 마법이 있는데 그게 신용카드다. 젊은 층의 카드빚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한 것은 바로 저 지름신이 강림하신 탓이다. 카드로 일단 긁고 생각하자. 그게 지름신의 메시지다.

지름 뒤에 '신(神)'이 붙은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무엇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본능과 충동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이성과 냉정을 가끔 뒤흔들면서 뚫고 나가버린다. 이성과 냉정의 제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능과 충동의 사이즈가 워낙 강대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름의 유혹으로 무장한 신과 맞대결하는 인간, 그것도 카드를 쥔 인간(호모 카디엔스?)의 고독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점이, 바로 지름신의 말맛이다. .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 '햄릿'(1990).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다.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 '햄릿'(1990).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다.



소비사회를 풍자하는 키워드 중에는 물신(物神)이란 말이 있다. 신은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이나 영혼에 관여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소비사회에서는 물건이 신격화된다. 신도 눈에 보이는 것,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물건을 위해선 정신의 긍지 따위는 버려도 된다고 물신은 말한다. 물신주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물건들에 대한 숭배이며, 그것 아닌 다른 가치에 대한 경멸이다. 그런데 지름신은 그 물신이 출산한 기형아다.

물신은 물건 자체에 신격을 부여했지만 지름신은 물건을 사고싶은 '충동'에 신격을 부여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성은, 그 동안 도덕적 비난을 받아왔지만, 이번에 지름신으로 승격함으로써 '무절제' 또한 신성한 것이라는 인상적인 결론에 이른다. 물건을 산 것은 '내'가 아니며, 나의 '참을 성 없음'이나 "대책 없음"이 아니라, 바로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뜻이라는 의미를 슬쩍 담아, 책임을 피하는 맛을 즐긴다.

지름신은 전방위적인 사물의 유혹에 둘러싸인 현대 인간의 번뇌를 적실하게 그려낸다. 물신은 이제 지름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 들었다.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내림같은 '충동'들이 인간의 행위를 이끈다. 지름신에서 나온 갈래말인 '지르가즘'은 사고 싶은 충동 대로 마구 지를 때의 후련한 기분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오르가즘 뒤에 오는 기묘한 후회와 허탈감이 지르가즘에도 그대로 작용한다. 한번 질러봐? 잠깐의 황홀 뒤 길게 죽어나기, 그게 문제의 핵심이다. 사자 아가리 만한 유혹과 쥐꼬리 만한 인내 중에서 누가 더 세지? 하는 수수께끼를 내놓고는 잡아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스핑크스. 그 스핑크스의 포즈로 내 앞에 앉아 답변을 기다리는 존재가 '지름신'이다. 거기다 페이니 핀테크니 뭐니 해서 소비는 갈수록 쉬워지고 그 뒤탈은 만만찮게 오래 가는 것도 문제다.

휴일 사이에 낀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소비를 높이겠다고 나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지름신이 강림하기를 희구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정부는 내수가 살아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외치지만 국민은 경제가 살아나야 소비도 늘릴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돋우는, '닭과 달걀'의 소비논쟁이 재연된다. 그래도 나라에서 저토록 쉬는 날까지 늘리면 지름신 면허를 내주시니, 주머니 걱정 따윈 살짝 접어놓고라도 뜨거운 애국심으로 지름신을 접대하러 가볼까 싶어지는 기묘한 시대다. 5월 첫날, 카드를 쥔 햄릿.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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