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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 수 만 마리가 거리를 질주하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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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세상읽기 - 발 없는 말은 어떻게 천리를 갈까요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경마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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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말 중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때 말은 두 가지 뜻이 절묘하게 겹쳐져 있다. 원래 천리를 가는 말은 천리마(千里馬)이다.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서역에 다녀온 수나라의 장발은 양제에게 한혈마(汗血馬) 이야기를 한다. 서역에는 피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 천리를 달리는 말이 있는데 그게 한혈마다. 양제는 이 말을 가지면 천하를 관리할 수 있겠다 싶어서 다시 장발을 보내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이 고사(故事)로 천리마는 중국과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초고속 교통수단의 꿈이 되었다. 그게 속담에 녹아들었다. 그 말(馬)이 아니라 다른 말(語)이 천리를 가지 않는가. 발도 안달렸는데 말이다. 서역의 천리마는 장발이 들은 헛소문이거나 그의 ‘뻥’일 수 있지만, 인간의 입에서 뛰어나온 천리마는 언제나 성능 좋게도 천리 만리를 휘휘 내달린다.
부드러운 혀가 튕겨낸 이 작은 말이 천리를 달리는 노하우는, 연구해볼 만하다.

자, 지금 말 한 마리가 태어났다. 모든 새끼들이 다 그렇듯 귀여운 말일지도 모른다. 설령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었다 하더라도 '문제'가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뛰고싶어진다. 동지(同志)를 가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들은 사람이 겪었던 ‘간질거리는 입’의 괴로움을 생각해보라. 말 속에 들어있는 콘텐츠가 흥미로울 수록 전파 욕망은 커진다. 그 콘텐츠는 어떤 대상에게 치명적일 수록 흥미롭다. 마침내 혀는 입 속에서 저 혼자 놀지 못하고 동무의 귀를 찾는다. 이때, 그가 강조하는 사항은, ‘너한테만 해주는 말인데...’이다. 이 말은 자기가 지키지 못한 책임을 넌지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그 컨텐트의 값어치를 올리는 말이다. 그런 부전지(附箋紙)가 붙은 정보일 수록 더욱 빠르게 달린다. 이른 바 탑시크릿이란 이름의 날개를 단 말이다.

인간이 생산한 천리마는 처음에 태어난 원형질 그대로 끝까지 달려가는 법이 거의 없다. 혀와 혀를 뛰어다니는 동안, 비약하고 창의력이 가미되고 감정이 개입되고 악의가 스며들고 허풍이 불어들고 장난끼가 발동하는 가운데, 새끼를 치고 쳐서 무리를 이뤄 달린다. 처음엔 한 마리였으나 나중엔 한 들판을 가득 채운 천리마 떼가 되어 인간세의 벌판을 휘저으며 달린다. 한 마디 말은 천리를 뛰는 동안 소설 한권이 된다.
천리마의 말발굽이 된 수많은 혀들은, 자신이 한 일이 끼친 해악에 대해 대개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입은 자신의 귀가 들은 이상을 적재(積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 나는 정직한 미디어였다! 그러나 입구멍은 귓구멍보다 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런 ‘증산(增産)없는 말발굽 노릇’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리라.

세상의 모든 말들이 천리마들이란 생각을 하기만 해도, 그것에 대한 조심과 경계가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 말들은 몇 개의 혀를 거치는 동안 사나워지고 또 생식 욕망으로 핏발이 서 있다. 그러나 그 말들도 죽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침묵이라는 강적 앞에서다. 광포한 천리마가 내부에서 충동하는 무시무시한 발길질을 견디고 이겨내는 한 사람의 정신 앞에, 말은 가만히 숨을 거둔다. 입구멍이 과연 귓구멍보다 크긴 하지만, 입은 귀와는 달리, 개폐(開閉)가 가능하다. 닫으면 닫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내 귀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입을 닫기만 하면 천리마가 다시 달려나가지는 못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광기의 천리마들을 잠재우는 내면의 너른 들판을 가진 영혼이 귀중한 건 그 때문이다. 당신이 천리마의 일부가 될 것인가, 천리마들의 무덤이 될 것인가. 혀 끝 하나에 달린 어마어마한 문제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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