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낱말의 습격'
상품이야 기다리면 당연히 오는 것이고 또 그 기간의 차이라 해봤자 특별한 배달사고가 아니라면 하루 이틀 사이인데도, 이토록 그 사정을 살피려 하고 기다림을 연막처럼 피우는 까닭은 뭘까. 컴퓨터나 tv 속에서 보았던 물건과 내 손에 쥐어질 물건과의 차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불신심리도 있겠고, 이미 내것이 되었으나 내 손에 닿지 않은 것에 대한 소유나 장악 욕망같은 것도 있으리라.
하지만 물건을 기다리는 2-3일 동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설렘같은 게 있다. 인간과 물건 사이 서로에게 닿고자 하는 자력이 달콤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내게로 오는 것과 내 마음의 손을 내벋는 것, 그것 사이에 감도는 상상력과 긴장감. 어쩌면 정작 만져질 물건보다 이 차연의 감미로움을 즐기려고 택배 주문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기분은 오래전 맛 보았던 어떤 기억과 꽤 닮아있기 때문이다. 연애 편지 말이다.
내가 편지를 보내면 며칠이 지나 그녀가 받아보고, 그 편지를 읽고난 뒤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편지를 쓰고, 썼다 찢고, 다시 쓰고, 그래서 답장을 보내면 그것이 다시 며칠간 우체국 배송시스템과 우편배달부의 손을 거쳐 내게로 돌아온다. 그 길고 지루하며 답답하고 먹먹한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는가. 그 시간 동안 나는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그리워하고 상상하고 지우고 다시 설레며 사랑의 한 생애를 고스란히 살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녀가 내게 도착하기 전에, 이 느린 택배시스템이 만들어준 사랑의 자력이 나와 그녀를 분발시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지 않았던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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