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불편한 시선에 쉬쉬…알바 구할 땐 외국인 오해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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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해서 전화를 하면 '저희는 외국인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요. 제가 '저 외국인 아니에요. 북…'까지만 얘기했는데 더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더라고요."


20일 다문화·탈북 청소년의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는 무지개청소년센터 개원 10주념 기념식에서 만난 탈북자 최수민(25·여·가명)씨와 전다영(26·여·가명)씨는 한국에 정착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주변의 시선을 꼽았다.

최씨는 갑자기 떠난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중국에 갔다가 북한으로 오는 과정에서 '정치범'으로 몰려 2009년 탈북했다.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최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최씨는 대학 시절 정식 아르바이트는 하지 못했지만 중국어 과외를 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자 최씨는 불안해졌다. 이력서를 쓸 때 북한 사람인 것을 밝히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처음 들어갔을 때 '엑셀'처럼 컴퓨터를 활용해야 하는 업무를 하지 못해 좌절했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그래도 한 번 합격했으니까 관련 자격증 따고 더 배워 도전하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금 최씨는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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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포로였던 할아버지 때문에 북한에서 살게 된 전씨는 2008년 1월 두만강을 건넜다. 처음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북한 사람인 것을 밝히지 말고,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도니까 삼천포 같은데서 왔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숨기고 싶지 않았던 전씨는 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했고 친구들의 관심이 반가웠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았다. 전씨는 결국 한겨레중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후 홍익대 사범대에 진학한 전씨는 굳이 북한 사람인 것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전씨는 "말할 시기를 놓친 것도 있었다"면서 "비밀이 있으니까 친해지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씨는 홍대를 그만두고 경인교육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 재입학하게 된다. 경인교대에선 입학식 날 당시 총장이 전교생들 앞에서 전씨에 대해 친히 소개를 하면서 오히려 더 환영을 받았다. 전씨는 2009년 무지개센터와 인연을 맺은 후 지금은 비교문화체험학습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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