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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의 현장]끝내 평창엔 못가고…쇼트트랙 챔프 노진규와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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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 속에 들어있는 앳된 청년, 노진규. 그는 열여덟에 쇼트트랙 국가대표선수가 됐고 열아홉에 세계챔피언이 됐다. 스물하나에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그 해 9월 어깨에서 악성종양을 발견했다. 2년간 병마에 맞섰고 스물넷에 운명했다. 다시 질주하고 싶었던 생이 끝내 트랙을 이탈한 슬픔에 잠긴 날.

4일 저녁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영정 속의 해맑은 얼굴과 부은 가족의 눈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노진규의 아버지는 누구냐 묻지 않았고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는 기자라 얘기하지 않았고 그저 밥 한술 떴다.
스물넷의 빈소는 어쩐지 어색했다. 노진규의 동갑내기 친구로 보이는 이들은 때때로 웃었지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를 두고 주저하는 듯 했다. 크게 웃지 않고 크게 울지 않았다. 낯선 빈소에서 그들은 친구를 낯설게 보내고 있었다.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진규가 투병 중 일 때 병문안 오는 것도 싫어했다.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라고 말했다. 곽윤기, 박승희, 심석희, 이호석 등 쇼트트랙을 함께 한 동료 선수들이 빈소를 지키거나 다녀갔다. 그들은 장례식장 주변을 서성였다. 노진규는 2013년 9월 월드컵 시리즈 1차 대회를 마친 뒤 조직검사를 했고 어깨 부위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뼈암의 일종인 근육종이었다. 소치동계올림픽에 나가려 훈련했지만 2014년 1월 팔꿈치 골절로 출전하지 못했다.

쇼트트랙은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위에서 경주하는 스포츠다. 타원형 트랙에서 원심력을 이겨내기 위해, 시속 40㎞가 넘는 속도로 달리기 위해 무던히 얼음을 밀어내고 박차야 한다. 날카로웠던 날도 이내 무뎌진다. 한 시간 훈련하면 스케이트 날을 100~200번 돌로 갈아야 한다. 노진규는 2011년 세계선수권 4관왕 직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흔치 않으니까. 2018년에 열리는 평창올림픽에 꼭 한번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노진규의 투병생활 2년은 스케이트 날을 다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저녁 스님이 30여분 동안 시다림(죽은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중도하차한 그의 꿈을 위로하는 것처럼 들렸다. 5일 서울 신림동 성주암에서 불교식 제례로 세상과 영면한 사람. 2년뒤 평창의 쇼트트랙 경기에서 나는 자주 노진규를 겹쳐보게 될 것 같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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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수습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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