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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최종수정 2016.01.22 09:13 기사입력 2016.01.2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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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

영화 '유스' 포스터

영화 '유스' 포스터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100세 시대는 새로운 단어들을 양산했다. 나이를 잊고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어모털(amortal)족'도 그 중 하나다. 미국 타임지 유럽편집장인 캐서린 메이어가 2011년 발간한 책 '어모털리티(Amortality)'에 나온 신조어로 우디 앨런(81), 믹 재거(73), 앨튼 존(69), 메릴 스트립(67) 등이 꼽힌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부류는 늘고 있다. 지난해 이애란(53)의 노래 '100세 인생'은 어모털족처럼 죽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재치 있게 부정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유스'가 전하는 메시지도 이와 같다. 왕년의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는 "어떻게 늙는지도 모른 채 나이가 들어버렸어"라고 푸념한다. 의사는 "밖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세요?"라고 되묻고 말한다. "젊음이요."

젊음에 대한 막연한 예찬은 아니다. 그동안의 노인 소재 영화들은 주로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며 향수나 우울증에 빠지는 내용을 담았다. '유스'는 이런 노년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년의 상황만 가져온다. 지금까지 어떻게 기억이 쌓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면 나이에 관계없이 진정한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물들을 향한 시선은 당연히 긍정적이다. 밸린저는 공적인 삶과 세계에서 은퇴했지만 "지휘하는 법을 잊을 리가 있나"라고 한다. 그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믹 보일(하비 케이틀)은 자신의 유작이 될 작품의 각본을 열정적으로 마무리한다.
영화 '유스' 스틸 컷

영화 '유스' 스틸 컷


이 감성은 20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다룬 젊음에 대한 동경을 종합선물세트처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밸린저와 보일은 스위스 알프스의 고급호텔에 머물면서 다양한 인물들과 어울린다. 연령대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삶의 변화를 갈구한다.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느라 바쁜 딸 레나 밸린저(레이첼 와이즈)는 이혼을 겪으면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마주한다. 지미 트리(폴 다노)는 엄청나게 성공한 영화의 배역으로 배우생활이 단정 지어질까봐 노심초사한다. 보일이 사랑하는 여배우 브렌다 모렐(제인 폰다)은 한때 할리우드의 대스타였지만 대중에게서 잊혀졌다. '선셋 대로(1950)'의 노마 데스먼드(글로리아 스완슨)와 닮았다.

파올로 소렌티노(46) 감독은 잠깐 등장하는 호텔 마사지사, 은퇴한 축구선수, 미스 유니버스, 서로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노부부 등에게도 비슷한 의미를 부여했다. 두 노인의 심상과 유사하게 묶이는 얼굴을 포착하고 특유의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더해 평범하고 나른한 상황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 덕에 사건이나 전형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긴장을 야기한다. 이러한 구성은 로르샤흐 테스트 같은 일종의 심리검사 성격도 부여한다.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우리 자신이 투영될 여지가 많다.

소렌티노 감독은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는 과정을 따라가지 않는다. 고급호텔을 적막한 요양원으로 비추면서 스스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배치한다. 밸린저는 첫 신에서 '새로운 미스 유니버스'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는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낸 특사의 '심플 송' 연주 요청을 거절하면서는 한 손으로 지휘라도 하 듯 비닐 조각을 계속 비벼댄다.

영화 '유스' 스틸 컷

영화 '유스' 스틸 컷


소렌티노 감독은 이런 세부적인 표현에 전작 '그레이트 뷰티(2013)' 등에서 사용한 꿈의 이미지를 더해 근본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밸린저가 새들과 나무, 소의 방울소리를 접하면서 자신이 소리의 중심에 있다고 상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 제작이 무산돼 후배들을 떠나보낸 보일은 그동안 그린 여성 캐릭터들의 환영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 장면들을 연기하는 케인과 케이틀은 각각 여든세 살과 일흔일곱 살이다. 숱한 작품 출연으로 붙은 관록으로 평범한 대사에도 힘이 실리는 마법을 보여준다. 일흔아홉 살의 폰다도 겨우 후반부 두 신에 등장하지만 중후한 연기로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케인이 '나우 유 씨 미: 세컨드 액트'의 촬영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난다. 그는 '유스'를 촬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요즘 배우로서 유작으로 남겨도 좋을 만한 각본을 선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스'는 아주 멋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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