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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레버넌트' 위대한 에너지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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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명 없이 '복수와 생존' 156분 리얼리티로 담아
험난한 여정으로 축적한 에너지, 계속 겉돌아

영화 '레버넌트' 스틸 컷

영화 '레버넌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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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53)는 국제영화제에서 선호하는 감독이다. '죽음 3부작'이라고 불리는 '아모레스 페로스(2000년)', '21그램(2003년)', '바벨(2006년)'에서 파괴적인 에너지를 중심으로 인간의 상실을 깊게 다뤘다. 슈퍼히어로와 코미디가 뼈대인 '버드맨(2014년)'에서는 연극인들의 자조와 자학에 풍자를 곁들이며 파멸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원동력은 리얼리티다. 그는 '버드맨'에서 왕년의 스타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을 편집 없이 롱테이크숏(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것)으로 따라붙었다.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 연극 무대와 분장실 등을 자연광으로 조명해 사실성을 더하면서 톰슨이 투영될 만한 또 다른 이야기를 구체화해 내면의 변화를 보여줬다. 톰슨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무대를 거듭할수록 "매일 다른 남자가 되려고 애를 쓰며 산다"는 대사에 힘이 실린다.
이냐리투 감독이 5년에 걸쳐 만든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도 이러한 뚝심은 여전하다. 영화는 동료 사냥꾼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의 배신으로 아들을 잃고 죽을 위기를 맞은 휴 글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복수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그린다. 서술의 원동력은 또 리얼리티다.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그동안 영화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19세기 모피 사냥꾼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엠마누엘 루베즈키(52) 촬영감독은 야생이 보존된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의 산림에서 촬영하며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햇빛과 불빛의 담백한 색감만으로 명암을 살려 극의 강렬함을 더 했다. 화면은 이야기의 흐름대로 글래스의 여정을 쫓아 튀지 않는다. 자연은 광활하게, 인물은 세밀하게 담으면서 리얼리티의 정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거센 바람과 거친 숨소리는 '버드맨'의 드럼 비트처럼 지루함을 달랜다.

영화 '레버넌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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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56분 동안 복수와 생존에 대해 고찰한다. 그 지점까지 안내하는 매개체는 부성애다. 첫 신부터 내레이션과 함께 글래스의 가족을 보여준다. 포니족 원주민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글래스는 모피 사냥꾼들 사이에서 이미 다른 존재다. 고립될수록 부정(父情)은 단단해진다. 이는 사냥꾼들을 습격하는 아리카라 족장에게서도 나타난다. 프랑스인들과 타협하며 살아가지만 딸을 빼앗기면서 모든 백인을 적으로 간주한다. 글래스를 사경에 빠뜨리는 회색 곰도 부정은 뒤지지 않는다. 새끼들에게 총구를 겨눈 모습을 보자마자 매섭게 달려든다. 총을 맞고 의식을 잃으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이후 복수와 생존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글래스의 여정을 암시한다.

영화는 글래스가 피츠제럴드에게 버려지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에 70분을 할애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글래스의 여정을 통해 자연은 물론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경이로움과 새로운 발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복수극은 피츠제럴드에 대한 서술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단출하게 흘러간다. 사실 그의 여정도 글래스 못잖게 쓰다. 아리카라족에게 두피를 잃으면서 피해망상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극악무도한 인간이 되는 쪽을 택한 것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냐리투 감독은 사냥꾼 대장인 앤드류 헨리(돔놀 글리슨)를 살해하고 두피까지 벗길 정도로 광기를 보이는 연유 등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영화 '레버넌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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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는 복수를 한 다음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얼굴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사경을 헤매면서 비슷한 표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낯선 인디언을 만나 구사일생하면서 여정이 구원으로 바뀌는 신이 대표적이다. 그는 꿈에서 아들이 아닌 나무를 껴안으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복수에 나선다. 제목처럼 죽음에서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복수는 내가 아니라 신의 뜻대로"라는 대사는 인위적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피츠제럴드의 숨은 신이 아니라 개척자들의 가죽을 빼앗아 거래하는 아리카라 족장이 끊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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