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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5ㆍ18 엄마가 4ㆍ16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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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어머니로 둔 어느 중년의 사내가 있다. 그가 작년에 일이 있어 광주에 내려가 있을 때 언젠가부터 저녁에 술 한 잔 먹고 자정 넘어 집에 돌아오면은 팔순을 앞둔 어머니는 책상머리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런 모습엔 익숙했지만 '자정 넘어까지 저러실 것이 뭐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원고 뭉치를 아들에게 내밀었다. 원고지 뒷면에, 혹은 신문에 끼어 들어온 광고 전단지 뒷면에 쓴 시 57편이었다. 전부 세월호에 관한 시였다.
아들은 그제서야 알게 된다. 작년 참사 직후부터 '엄니'는 1년간 매주 한 편 이상씩 시를 써 왔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거리에서 통곡하고 분노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때, 이 노인은 자정 넘은 고요한 시간에 어머니의 모습으로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엄니의 시를 타이핑 하면서 낯선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이를테면 '용돈'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안산 세탁소집 딸내미, '아이의 젖은 옷에서 꺼낸 지갑에는 두 번 접힌 만원짜리 두 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라는, 어떤 팩트보다도 담담한 팩트가 시어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슬픔을 가장 슬프게 전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엄니는,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엄니든 모든 어머니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엄니라는 것이다.

'엄니 시인'은 1980년과 4ㆍ16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아니 종이 두 장이 하나로 겹치듯 하나로 겹치는지를 35년 전 자신의 끔찍했던 기억을 들춰내 얘기한다. 그건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기억이었다. '5ㆍ18 엄마가 4ㆍ16 아들에게'라는 시에는 이 엄니가 1980년 5월에 겪었던 일, 그 참혹했던 기억이 녹아 있다.

"그때 젊었던 엄니는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은 열일곱 살 자식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쓰러졌다."

사랑하는 아들아/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라 하면/쏟아낼 엄마의 눈물은 말라 버렸다...35년이 흘러/2014년 4월16일 엄마의 아들은 아빠가 되었다/팽목항 바다를 향해 울음을 삼키며 울고 있는/안산의 아들을 본다/네가 낳은 열일곱 아이는 어디 있느냐.

이 시를 제목으로 해서 다음 달에 나오게 될 '엄니' 최봉희 시인의 6번째 시집의 값은 4160원이다. 왜 4160원이 됐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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