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김홍국 하림 하림 close 증권정보 136480 KOSDAQ 현재가 3,305 전일대비 20 등락률 -0.60% 거래량 1,246,764 전일가 3,325 2026.04.23 15:30 기준 관련기사 홈플러스 급한불 끄나…하림그룹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우선협상자로 [단독]10년간 과징금 달랑 '4건'… 담합의 유혹[설계자들]③ [요동치는 도심개발]①성수 HL그룹·양재 하림 부지 꿈틀…'땅주인 모시기' 전쟁 그룹 회장이 축산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주 작은 계기에서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집에 가져가 잘 키워 몸보신 하라고 준 10마리의 병아리를 기르는 게 그렇게 즐거웠다.

당시에는 사료가 없어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아 삶고, 부모님 몰래 쌀독의 쌀까지 퍼냈다.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도 잘 자랐다. 토실하게 자란 닭들은 닭 장수들이 욕심을 냈고, 보통 한 마리 값이 250원이였던 시세보다 값을 더 쳐줬다.

모두 해서 2500원을 받았고, 이 돈이 김 회장이 처음 만든 사업자금이었다. 라면이 달랑 20원 하던 시절이었기에 10살짜리 꼬마에겐 상당한 거금이었다.


육계와 장사에 재미가 난 김 회장은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당시 병아리 한 마리 값은 7원이었고, 10마리의 병아리가 100마리 넘게 늘었다.


닭을 키우는 일이 어린아이의 놀이에서 작은 사업이 된 셈이었다.


김 회장은 1986년 하림을 설립한다. 하림의 설립은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아시안게임(1986년)과 서울올림픽(1988년)이 잇따라 열리며 양념치킨 체인점이 인기를 끌었고, 닭고기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2000만∼3000만원씩 벌었다. 그렇게 10여년간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7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R&D), 해외진출 등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김 회장은 축산사료 가공업체 그린바이텍(1999년)과 천하제일사료(2001년)를 각각 설립ㆍ인수하고 농수산물 전문 쇼핑몰 NS홈쇼핑(2001년)도 출범시켰다.


기존 하림식품 등이 사육과 도계, 육가공 등을 담당했다면 사료 생산과 유통 등 전후방 사업까지 완전히 통합한 것이다. 이는 김 회장이 1982년 돼지 파동을 보면서 구상했던 일이라고 한다.


이후 사업은 승승장구하며 국내 최대 축사업체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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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국내 1위 업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계 어느 곳에나 공장을 지을수 있는 데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장벽도 사라지고 있는 무한경쟁 시대인 만큼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프로필>
▲1957년 전북 익산 출생
▲1978년 이리농림고등학교 졸업
▲1986년 (주)하림식품 설립
▲1990년 (주)하림 설립
▲1998년 호원대 경영학과 졸업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2001년 하림그룹 회장
▲2005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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