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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과 오만의 말말…말이 뒤집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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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말[馬]'의 해였던 2014년은 어느 해보다 '말[言]' 때문에 다사다난했다. 세치 혀의 힘은 강했다. 말 한마디가 개인이나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짓기도 하고, 신중치 못한 발언이 본인에게 칼날처럼 되돌아오기도 했다. 말이 불러온 파장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것이다. 저물어가는 갑오년 '청마의 해', 말[馬]은 가고 말[言]만 남은 2014년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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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미안하다" 스러져간 사람들= 올 연말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조 전 부사장은 마카다미아 서비스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사무장에게 "너 내려!"라고 고성을 지르면서 그를 기내에서 내쫓고 비행기를 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상식에 벗어난 행동에 질타가 이어지면서 그는 한진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현행법 위반 혐의로 국토교통부와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외신들이 이 사건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7일 검찰에 출석한 조 전 부사장은 "죄송합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이어 사건 당시 여객기에서 내쫓긴 사무장이 공개한 '사과 쪽지'가 또다시 대중의 공분을 샀다. 손바닥만한 수첩 낱장을 찢어 쓴 쪽지에는 "직접 만나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못 만나고 갑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두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6ㆍ4 지방선거는 말 한마디가 표심에 영향을 주며 이변이 연출됐다. 정몽준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아들의 말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지목하며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정 후보는 "아들을 잘못 키운 제 잘못"이라고 사과하며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결국 선거에 패배했다.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서울시 교육감 선거도 후보 자녀의 결정적 한마디가 선거의 당락을 갈랐다. 고승덕 후보의 장녀 희경씨는 선거를 나흘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시민들에게'라는 제목으로 고 후보가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혈육을 가르칠 의지가 없으면서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을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며 "서울의 미래를 위해 서울시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고 후보는 유세 마지막 날 격한 감정으로 "못난 아버지를 둔 딸아, 미안하다"고 외쳤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후 고 후보의 "미안하다"는 개그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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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에 선 정국 흔든 말말말= 연말 정국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지난 10일 정씨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또 그 불장난에 춤춘 사람이 누군지 다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처음 문제가 제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며 농담으로 일축했다. 이후에도 문제가 사그라들지 않자 박 대통령은 "지라시(증권가 정보지)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못 박고 며칠 후 통일준비위원회 오찬에서는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며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이 그저 온갖 말이 판치는 지라시에 불과한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박 대통령은 올 초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 방안을 묻는 질문에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해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는 등 화제가 됐다. 해당 발언이 주목을 받자 청와대 관계자는 "'통일은 대박'이란 말은 대통령이 평소에 자주 쓰던 문구"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안대희, 문창극 등 2명의 국무총리 후보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문 후보는 과거 발언이 중대한 결격 사유가 됐다. 언론인 출신인 문 후보는 2011년 한 교회의 강연자로 나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고, 서울대 강의에서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그는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지 14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 19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 서두에 "헌법재판소는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 즉 생각과 판단에 있어 사악함이 없고 늘 공경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마음자세를 잃지 않고자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사무사 무불경' 정신을 강조하면서 헌재 결정이 일으킬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헌재 정당해산심판 최후 진술에서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통합진보당을 개미굴에 비유하기도 했다.

◆경제계 인물들도 나도 한마디= 올해 경제계 인물들은 어려운 경제용어 대신 쉽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주의를 끌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해 시장에 혼선을 줄 깜짝 금리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현재 부동산 대출 규제는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이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최 부총리는 취임 이후 첫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며 경기부양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달 진웅섭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첫 임원회의를 열고 "감독당국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훈계하고 개입하는 '담임선생님' 역할을 해선 안 된다"며 시장의 자율과 소통을 존중하는 조용한 금감원을 만들 것임을 시사했다. 그동안 금감원이 연이어 터진 금융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다.

지난달 진웅섭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첫 임원회의를 열고 "감독당국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훈계하고 개입하는 '담임선생님' 역할을 해선 안 된다"며 시장의 자율과 소통을 존중하는 조용한 금감원을 만들 것임을 시사했다. 그동안 금감원이 연이어 터진 금융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3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집에 시집온 며느리처럼 욕 좀 먹더라도 자식들에게 미래를 물려주겠다"며 쌀개방 등 현안 처리의지를 밝혔고,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6월 "우리 경제상황은 빨간불도, 파란불도 아닌 노란불입니다. 잘 되는 것도, 그렇다고 몹시 나쁜 것도 아닌, 증시로 말하면 답답한 횡보 장세"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재계의 깜짝 행보도 올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소재가 됐다. 지난 9월 현대차그룹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아 세간을 놀라게 했다. 고가 인수논란이 일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사기업이나 외국기업이 아니라 정부 땅 사는 것이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며 입찰에 참여한 임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재벌가 딸로는 처음으로 해군 장교로 입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민정씨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할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씨는 훈련 중 면회를 온 지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딸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훈련 기간을 거치며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말이 오가는 카카오톡도 말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지난 10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감청 영장에 대해 7일부터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응하질 않을 계획"이라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검찰의 통신감청 요구를 거부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후 이 대표는 카카오톡을 통해 아동음란물이 퍼졌지만 이에 대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동ㆍ청소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감청 영장 거부에 대한 보복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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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국민 가슴 다독거린 '말 없는 말'= 지난 4월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도 뼈아픈 말을 남겼다. '가만 있으라'는 올 한해 국민들을 가장 화나게 만든 한마디였다. 당시 세월호가 침몰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낸 채 탈출했고, 방송을 따른 대부분의 단원고 학생들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교육 방식을 상징하면서 사회 전체에 화두로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힘이 되는 선물 같은 말도 있었다.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침략으로 끌려가 이용을 당했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행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떤 사람이 중립을 지켜야 하니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답해 큰 울림을 줬다. 그러나 교황은 말보다는 따뜻한 눈빛과 표정이라는 '말 없는 말'로 생채기 난 한국민의 가슴을 다독거렸다.

연예계에서는 방송인 김보성이 '으리(의리)' 한마디로 CF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가 '신토부으리' 등을 외치며 찍은 식혜 광고가 온라인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 믿음과 신뢰가 사라진 현실에서 의리라는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김보성은 한 해 방송가를 종횡무진했다. 그는 향후 5년간 총 1억원 기부를 약속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팬들의 사랑에 보답했다.

그 밖에 올해 1000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남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는 명대사가 각종 패러디를 만들어냈고, 안방극장에선 '미생' 신드롬이 일면서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라는 대사가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가슴에 찡한 여운을 남겼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젊은 층 사이에선 '썸 타다'는 말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가수 소유와 정기고가 함께 부른 노래 '썸'이 인기차트 1위를 석권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등의 가사가 젊은 남녀들의 공감을 일으켰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젊은층 사이에선 '썸 타다'는 말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가수 소유와 정기고가 함께 부른 노래 '썸'이 인기차트 1위를 석권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 등의 가사가 젊은 남녀들의 공감을 일으켰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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