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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37. ‘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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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본 영화 ‘디 인터뷰’와 뜻밖의 김정은

영화 '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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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인터뷰’를 보고나면 두 가지 이상의 태도를 취할 수 있으리라. 첫째는 ‘논평할 가치도 없는 B급이다, 뭘 더 바라는가’이고, 둘째는 ‘그래도 금기의 소재를 건드린 용기는 가상하지 않느냐, 엉성하지만 북한의 살벌한 내부를 파헤쳐 오락화했다는 점은 봐줄만 하지 않느냐’ 따위의 두둔이리라. 양쪽에 다 수긍하는 입장이지만, 이 영화를 곰곰이 뜯어본다면 북측이 이미지 치명상을 입을 우려를 오히려 접지 않을까 싶다. 노이즈 마케팅에 극적으로 성공한 소니픽처스가 그 ‘영화적인 자질’을 의심받는 역풍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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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6년작 ‘네트워크’를 보고난 뒤 그 잔상이 오래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뜻밖에도, 물의를 일으킨 이 영화와 겹쳐지면서 어떤 통찰이 오는 것 같다. 루멧은 뉴스쇼를 진행하는 앵커를 통해서 ‘미디어’를 예언해놓고 있다. 해고통지를 받은 앵커는 쇼에 나와 그간 입에 담지 못했던 진정성 있는 발언을 마구 쏟아내자, 그것이 시청률 대박을 터뜨린다. 앵커는 억압된 세상의 분노를 대신 터뜨려주는 구세주같은 존재가 되고 방송사는 이를 이용해 쇼를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 이와 맞물려 요즘의 IS와 비슷한 국제적 테러집단과 방송사가 결탁하여, 은행을 털고 살인을 하는 현장을 생중계하는 구상이 진행되는데, 결국 그 범죄자들이 저 구세주 앵커를 쇼 도중에 살해하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쪽으로 스토리가 흘러간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뭘 말하고 싶었을까. 미디어가 뉴스를 전달하거나 사실을 유통시키는 것을 지나, 오로지 시청률만을 위한 광기의 쇼로 변질되는 어떤 묵시록을 거기 담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세상의 어떤 뉴스라도 방송 카메라 앞에선 ‘쇼’가 되고, 그것을 찧고 까부는 뉴스수다꾼들이 득세하고, 미디어 사회는 총체적인 예능화의 길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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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인터뷰’는, 미디어에 관한 어떤 질문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의 문법을 따른다. TV 타블로이드(버라이어티)쇼 ‘스카이락 투나잇’의 진행자인 데이브 스카이락은(제임스 프랭코가 연기했다) 시시콜콜하지만 시청률을 끌어올리는데는 그만인 인터뷰의 귀재이다. 동성애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온 가수 에미넴(Eminem)이 사실은 동성애자(물론 영화의 픽션이다)라는 고백을 이끌어내고 배우 로브 로우(Rob Lowe)가 가발을 훌훌 벗고 대머리임을 자백하는 인터뷰를 성사시킨다. 아주 유능한 인터뷰어다. 백미는 매튜 매커너히(Matthew McConaughey)다. 이 남자배우가 염소와 섹스하는 사진이 나왔다고 옆에서 알려주자 데이브는 “매튜를 인터뷰하자”고 말하면서 “아참, 그 염소도 데려와. 그 놈에게도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까”라고 조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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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가 있는데, 그가 애런 래파포트(세스 로건이 맡았다)이다. 애런은 인기절정의 인터뷰 쇼를 이끌어낸 데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제대로 된 뉴스가 아닌 허접해보이는 예능쇼를 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김정은과 관련한 뉴스에서 김씨가 스카이락 투나잇쇼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애런에게 필이 짜르르 왔다. 저 친구를 인터뷰하자. 국제 스포츠 쪽을 쑤셔, 되면 좋고,의 심정으로 메일을 보낸다. 그런데 응답이 왔다.

김정은(랜들 박)을 인터뷰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정치적인 인터뷰나 인권운동가의 인터뷰같았으면, 영화의 소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능프로에 가까운 가십인터뷰였기에 오히려 이 30대 북한 권력자가 응할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영화는 추론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친구라고 자칭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이, 이 영화를 기획하는 데에 어떤 영감을 주었을지 모른다. 이 권력자 프렌드가 예능에 열광하는 기질을 지니고 있다고, 북한을 다녀온 그가 이미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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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은, 심각한 문제까지 오락화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사소하게 만드는 괴력이 있다. 예능 프로에 등장한 김정은은, 일정한 위험을 감수만 한다면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이미지나 경직된 관념들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예능’들이 그런 기능을 이미 해오고 있기도 하다. 예능쇼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정은은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최고의 화제를 불러모으고 세계적인 시청률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금기 속의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소재로 다룬 것만으로도 이미 그런 뉴스파워를 입증하지 않았던가.

데이브와 애런이 생중계 인터뷰를 위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은 김정은이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뉴스’를 찾아 들어가는 자와, 자신의 노출을 위해 나오는 자와의 머리 싸움과 감정적 교차점이 이 영화가 선사하는 ‘보기드문 풍경’의 지점이다. 아니, 그 지점에 좀더 고민을 했더라면, B급을 면할 수도 있었을텐데, 영화는 손쉬운 선택으로 이야기의 뻔한 공식을 세워간다. CIA가 개입하고, 암살 음모가 등장하고, 그들은 예능 인터뷰어가 아니라 국가적인 미션을 띤 간첩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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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의 입에서 속사포로 터져나오는 욕지거리 수다와 거친 성적 농담이나 표현(나는 한국어로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어떤 말이 남자(여기서는 김정은 역)의 입에서 그대로 튀어나오는 영화를 생전 처음 봤다)들이 스토리를 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그야 말로 어이없는 웃음을 강요하는 황당 시추에이션이 재미를 위해 덕지덕지 누빈 서비스이다. 애런이 호랑이와 만나는 장면, 대형 퀵서비스 물건을 항문으로 숨기는 장면, 북한 여인 박숙인(다이애나 방)과의 호떡집같은 섹스장면, 문득 터져나온 유태인 차별 발언, 탱크 놀이, 손가락을 깨물어 아예 뜯어버리는 북한군과의 몸싸움... 이런 것들이 이 영화의 화려한 미국식 허접개그의 명세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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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김정은이 데이브와 더불어, 북한 란제리녀들과 향락을 즐기고 당구를 치는 장면에서 한국가수 윤미래와 타이거JK의 노래 ‘페이데이(PAY DAY)'를 무단으로 써서 말썽을 일으켰다. 이 장면은 북한의 권력자에 대해 외부세계가 굳게 지니고 있는 ’최악의 방탕자‘ 이미지를 돋을새긴다. 이 노래와 함께, 기억에 남는 곡이 또 있다.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불꽃(Fire work)'이다. 김정은은 데이브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이 노래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영화는 김정은의 내면을 이 곡의 가사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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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비닐봉지처럼 느껴진 적 있니
바람에 나부끼며 다시 오르려고 한 것 말이야
자기가 종이처럼 느껴진 적 있니
한 방에 무너질 카드로 만든 집같은 것 말이야
자기가 이미 죽어서 깊이 묻힌 것처럼 느껴진 적 있니
소리 질렀는데도 아무도 듣지 못하는 상황 말이야
네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니
왜냐하면 네 속엔 아직 불꽃이 있기 때문이지

Do you ever feel?
Like a plastic bag
Drifting through the wind
Wanting to start again

Do you ever feel?
Feel so paper- thin
Like a house of cards
One blow from caving in

Do you ever feel?
Already buried deep
Six feet under screams
but no one seems to hear a thing

Do you know that there's
still a chance for you
Cause there's a spark i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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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살해 공작은 오히려 실패하고 인터뷰는 진행된다. 처음엔 ‘예능’으로 묻던 데이브의 질문이 차츰 ‘다큐’로 바뀌자 김정은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평양 거리에서 본 마켓의 가짜 쇼윈도를 추궁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의 숫자를 댔을 때, 김정은은 질문이 왜 각본과 다르냐고 따진다. 그때 데이브는 다시 ‘예능’으로 돌아와, 김정은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아이 마음을 끄집어낸다.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지녔던 불만을 털어놓으며 슬금슬금 자극한다. 그러면서 저 비닐봉지 노래를 부르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권력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입장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된 그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김정은은 울컥 하여 눈물을 흘린다. 이쯤이면 좋았을 것을, 영화는 이 북한의 신(神)을 바지에 똥을 싸는 얼간이로 조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실, 권력이 신앙이 된 그곳에서 이런 인터뷰가 외부로 실시간 방영된 것만 해도 이미 ‘정신적인 처형’이었을텐데, 영화는 자신이 B급임을 입증하기 위해, 탱크 몰고 도망가는 데이브 일행을 김정은이 헬기까지 몰고나와 추격하도록 한다. 김의 선명한 종말이 이 영화가 제공하는 비장의 서비스인 셈이 되었다. 일본의 소니에서는 그의 살해 장면이 지나치게 잔혹하지 않도록 수위를 낮추게 했다고 한다.

영화 '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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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김정은을 비웃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절대 권력의 내면을 얼핏 비춘 것이 아닐까 한다. 3대로 이어 내려오면서, 북한을 ‘창업’하던 그 열기가 승계되지 못한 채, 그 내부 역풍과 글로벌 개방의 내우외환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젊은 독재의 고독한 초상을 희화적으로나마 그려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그곳의 ‘최고존엄’을 똥싸개로 만든 이 영화는 그러나, 우리를 후련하게 하진 않는다. 오히려 한민족 전체에 대한 경멸적 시각과 분단 문제를 읽는 거칠고 조잡한 미국적인 관점들이 널려있어 씁쓸하고 불편한 기분을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또, 우리가 풍자할 수 있는 자유는, 아무리 절대적인 악으로 지목된 영역이라 하더라도, 똑같거나 비슷한 풍자를 그쪽으로부터 되돌려받았을 때에도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 바탕 위에서 구가되어야 한다는 점도 병기하고 싶다. 역지사지가 안되면, 특정대상을 임의로 공격하는 영화 자체가 얼마든지 ‘폭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성(理性)까지도 예능에 팔아먹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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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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