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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카' 읽었다고 고문·옥고…32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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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1980년대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50대가 32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판결을 한 판사는 사법부의 잘못에 대해 피고인에게 사과를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혁명서적을 읽고 이적활동을 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돼 1982년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53)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씨는 경희대 재학 중이던 1981년 6월 당시 '반국가단체'로 몰린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함께 북한을 찬양ㆍ고무ㆍ선전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당시 김씨를 연행하며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다. 수사당국은 김씨를 체포하며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들이 '혁명서적'이라고 지목한 책은 E.H.카의 '러시아 혁명사'와 '볼셰비키 혁명',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에리히 프롬의 '사회주의 휴머니즘' 등 대학가에서 일반 교양서로 분류되는 사회과학서적이었다.

김씨는 한달 만에 풀려났지만 같은 해 9월 다시 영장없이 불법 구금당했다. 이때 수사당국은 고문과 협박을 해 김씨가 "북한에 동조하고, 그들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했다"고 허위자백하게 했다. 검찰은 당시 이 진술을 자백을 바탕으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 뒤 재판과정에서 김씨는 진술을 번복했지만 검찰은 압수된 서적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입증된다며 그의 유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가 한 동아리에 가입해 '역사란 무엇인가'와 E.R.셀리그먼의 '경제사관의 제문제' 같은 책을 탐닉하는 과정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김씨를 몰아붙였고 결국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2년 6월형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32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김씨의 자술서와 신문조서는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에 의해 작성됐고, 당시 재판 과정에서도 내용이 부인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압수된 책들에 대해서도 "내용상으로 북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출판사에서 정상적으로 출판한 서적이나 복사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사법부가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를 애써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큰 고통을 당한 김씨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재심 판결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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