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는 쑥밭이다. 서울은 무사하나?”
1977년 오늘. 밤 9시 15분께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나자 당시 지역주재기자로 파견 나가 있던 모 신문사 기자가 본사에 통화한 내용입니다. 그 기자는 북한의 공습이 시작된 걸로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사고 원인은 대형사고가 대부분 그렇듯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규정상 폭발물을 실은 열차는 바로 통과해야 함에도 스무 시간이 넘게 역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급행료’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호송원들은 역에다 항의했으나 묵살 당합니다.
그러자 화가 난 호송원은 술을 마시고 촛불을 켠 채 열차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만 촛불이 넘어지면서 다이너마이트 상자에 옮겨 붙은 것입니다. 불이 나자 물을 뿌리고 모래를 끼얹었지만 진화에 실패 했습니다. 열차 화물칸은 물론 역에 조차 제대로 된 소화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당시 국민가수로 인기를 끌던 하춘화씨가 역 앞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었는데 공연 시작 15분만에 사고가 났습니다. 이 때 하춘화씨를 구한 것이 바로 이주일씨였습니다.
이리역은 1995년 8월 이리시와 익산군이 합쳐져 익산시가 되면서 역명이 익산역으로 개명됩니다. 익산시는 오명으로 남을 ‘이리역’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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