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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하우스푸어, 집이 웬수인가 정부가 웬수인가 제도가 웬수인가

최종수정 2014.11.04 11:10 기사입력 2014.11.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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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빚으로 지은 집'

빚으로 지은 집

빚으로 지은 집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서민들에게 '빚'은 일상이 됐다. 빚은 또 다른 빚을 부르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소득의 증가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올 들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었다. 주택 대출이 이중 75%를 차지한다. 대출을 받지 않고서는 집 장만이나 전세를 꿈꿀 수 없다.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한 쪽에선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를 파탄 나게 할 '뇌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다른 한 편에선 아직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신간 '빚으로 지은 집'은 전자의 입장이다. '빚'이 한 가정을, 나아가 한 사회를 어떻게 절망에 빠트리는지에 대한 살벌한 경고가 도처에 깔려있다.

이 책은 우선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부터 바로잡는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된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자 그 연쇄 효과로 세계 금융시장이 일제히 휘청거렸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일제히 복잡하게 설계된 금융 파생상품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에서는 쓰러져가는 금융기관들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구제 금융을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과도한 빚'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가계 부채는 2000년부터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7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빚이 늘자 소비가 줄었다. 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등 내구재 소비가 금융위기 직전에 급감했다. 저자는 각종 통계수치를 인용하며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빚은 그 속성상 오직 채무자에게만 위험을 지운다. 가령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값이 하락했을 경우, 그 부담은 온전히 채무자의 몫이다. 집값이 조금만 하락해도 채무자의 순자산은 타격을 받지만, 그렇다고 빚이 줄어들진 않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머시드 카운티에서는 2000년대 초반 주택 시장 활황세에 힘입어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주택 구매에 나섰다. 2002년과 2006년 사이 집값은 60% 뛰었고, 가계 부채는 80% 증가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결과는 참담했다. 주택 가격이 모기지 대출액보다 낮게 떨어지면서 '깡통 주택'이 속출했다.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2011년 미국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은 집의 23%가 '깡통 주택'으로 전락했다. 채무자들이 이 같은 곤경에 처해도 채권자인 은행은 손해볼 일이 없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집을 압류해 팔아버리면 그만이다.

이 같은 현상은 부의 양극화 문제로까지 심화된다. 저자는 미국의 가계를 5분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금융 자산이 소유 자산의 80%에 이르는 상위 20%는 주택 가격의 폭락으로 인한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가진 자산이 집뿐이고, 이마저도 빚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위 20%는 집값 하락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저소득층의 부채는 고소득층의 자산이다. 금융시스템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사람은 결국 고소득층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은행의 주식과 채권을 소유한다는 것은 은행이 발행한 모기지 대출을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주택 소유자들이 지불하는 대출 이자도 금융 시스템을 돌고 돌아 부자들에게로 흘러들어 간다."

그렇다면 '부채의 악순환'을 끊을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경제 주체들이 나서서 가계 부채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 정부가 은행 살리기에 매달리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부채 탕감 정책을 펼쳤다면 한결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금융권에는 흥미로운 대출 방식을 제시한다. 돈을 빌려주는 대부자도 위험과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이른바 '책임 분담 모기지'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람이 집을 사기 위해 은행과 돈을 빌리는 계약을 맺는다면, 그 계약에는 차후 시세차익이나 손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각종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대출을 받아 집 사기를 권유하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질문한다. "한국은 대외 채무의 위험성을 잘 관리했지만, 국내의 높은 민간 채무로부터 비롯된 문제에는 여전히 노출돼있다. 주택 시장이 침체하기 시작하거나, 가계가 추가로 대출을 받을 여력이 감소하면 한국 경제의 총수요는 부정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그런 만일의 사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저자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의 아티프 미안 교수,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아미르 수피 석좌교수다. 이 둘은 최근 IMF가 선정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45세 이하 차세대 경제학자 25인'에 선정됐다.

(빚으로 지은 집 /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1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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