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코스, 또 독특한 골프장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은 그 어떤 모험보다 흥미롭다.
필자가 라운드한 골프장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치는 벙커(awesome bunkers)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파인밸리 10번홀(파3) 그린 앞 벙커다. '악마의 항문(Devil's asshole)'이라는 애칭이다. 얼마나 악랄했으면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깊이 5m에 둘레 길이 4m의 깔때기 모양이다. 하수구 맨홀처럼 생겼다. 한번 빠지면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언플레이어블'이다.
벙커 내 잔디언덕 높이는 1m, 배수로 사이 모래 폭이 5m다. 문제는 잔디 고랑에 공이 빠지면 언덕 때문에 스탠스를 취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질긴 러프에 공이 박혀도 마찬가지다. 영국 켄트에 위치한 성 조지로열클럽(Royal St. George's)은 '교장선생님 콧구멍 벙커(Principal's Nose Bunker)'라는 벙커가 유명하다. 단상 밑에서 학생들이 위로 바라다본 교장선생님의 콧구멍처럼 생겼다는 의미다.
보통 모래가 채워져 있는 움푹 파인 곳은 '벙커(bunker)' 또는 '트랩(trap)', 잡풀로 채워져 있는 곳은 '그래스 벙커(grass bunker)'라고 부른다. 그래스 벙커 중 최고는 단연 태국 치앙마이의 갓산골프장이다. 달 분화구 같은 그래스 벙커가 18개 홀 곳곳에 포진해 골퍼들의 미스 샷을 기다린다. 턱이 높아 8번 아이언보다 긴 클럽은 사용할 수가 없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7번홀(파4홀) 그린 앞에는 '로드벙커(road bunker)'가 입을 벌리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명명됐고, 일명 '나카지마 벙커'라고도 부른다. 너비와 깊이가 각각 3m인 항아리 벙커다. 1978년 디오픈에서 선두를 달리던 도미 나카지마(일본)가 이 벙커에서만 4타를 까먹고 결국 9타 만에 홀아웃해 아예 이름까지 붙여졌다.
글ㆍ사진=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