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의 역설 '3조달러 넘게 풀고도 디플레 불안'
애초 양적완화를 반대했던 인사들은 대규모 달러 자금이 풀리면 하이퍼 인플레가 발생해 세계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열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경기 부양은 이뤄지지 않았다.
성장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다. 장단기 금리 차는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지표로 인식된다. 최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국채 30년물과 5년물 간 금리 차는 1.53%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앞선 두 차례 양적완화가 종료될 당시보다 최소 0.4%포인트 이상 낮은 것이다. 3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후 금리차는 0.85%포인트 줄었다. 3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후 경제성장 기대감은 계속해서 떨어졌다는 의미다.
물가 상승 기대감도 동반 하락했다. 5년물 국채 금리와 5년물 물가연동 국채 금리 차는 2.34%포인트에 불과하다. 시장에 반영된 5년 후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2.34%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 역시 1차와 2차 양적완화가 끝났을 때인 2010년 3월과 2011년 6월에 비해 낮은 것이다. 당시에는 금리차가 3%포인트 이상이었다. 더 많은 달러가 풀렸음에도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되레 낮아진 것이다.
◆3조달러 풀렸지만 부는 상위 10%만= 막대한 달러 자금이 풀린 것은 확실하다. 리먼브러더스 붕괴 전 9000달러에 불과했던 미국 FRB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가 현재 4조4000억달러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달러를 풀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가 불안한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풀린 달러가 일부 고소득층에 집중된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러는 풀렸지만 그 달러가 일부에게 편중되면서 결국 소비와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들의 지난 5년간 시간당 임금 증가율은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붕괴 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입지는 약해졌고 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노동력 착취는 자산가들의 부만 불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이달 초 FRB 소비자금융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소득이 증가한 계층은 상위 10%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美채권, 구조적 요인으로 강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채권은 전문가들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처럼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 전쟁의 불안감이 커지면 채권을 강세를 나타내게 된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라며 구조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지정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가 채권 강세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웨스턴 자산운용의 존 벨로우스 펀드매니저는 "채권 강세의 원인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보다 미국의 잠재 성장률이 낮아진 것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채권 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퍼더레이트 인베스터스의 도널드 엘렌버거 투자전략가는 내년 미국 경제가 10년 만에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며 채권 투자자들은 낭패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BNP파리바의 애론 콜리 투자전략가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채권 투자자들이 당장의 미국 경제 상태보다는 지속적인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계속 채권을 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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