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발전의 뿌리' 산업단지 50년을 돌아보다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를 신(新)공업도시로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번영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1962년 2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육성이 울산 남구 매암동 납도마을에 울려 퍼졌다. 국내 최초 산업단지의 탄생을 알린 '울산공업지구설정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불씨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산업단지 건립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시행되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 제1차 경제개발계획 통해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
라디오·TV·의류·신발 생산…'메이드 인 코리아' 알린 한강의 기적
하지만 1961년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1차 산업 중심인 대한민국의 산업구조를 2차 산업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 중심에 산업단지가 있었다. 자립경제의 기반인 정유ㆍ비료ㆍ종합제철 등 국가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시설이 들어설 공업지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 삽을 뜬 것은 울산이었지만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먼저 올라온 것은 구로산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였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영등포구 구로동의 논과 밭, 야산은 수출 중소기업들을 위한 산업단지로 개발돼 1964년 처음으로 조성됐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를 생산하는 동남전기공업이 가장 먼저 입주해 시운전과 동시에 공장을 가동했다. 10개의 국내 기업과 싸니전자를 비롯한 20여개의 재일교포기업이 자리를 잡았으며 미국 기업도 1곳이 들어왔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구로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스웨터를 비롯, 의류, 가발, 신발, 인형 등 봉제품, 합판, 전기제품 등이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갔다. 대부분이 해외 기업체의 주문에 의한 OEM 생산이므로 주문회사의 상표가 붙었지만, 제품의 한 귀퉁이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그가 붙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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