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너무 쌓이면 지식 유통의 정체...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곳에 둬야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해마다 알게 모르게 집안에서 늘어만 가는 게 '책'이다. 신간에, 베스트셀러에, 수험서적에, 각종 교재에 하나 둘 사 모은 것이 어느 새 책장을 가득 메운다. 남들보다 독서량이 월등히 많은 애독가들이라면 책이 불어나는 속도 역시 어느 집보다 빠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에 관해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태도를 보인다. 책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라면, 많아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양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책장은 좁디좁기 때문이다.
신간 '장서의 괴로움'은 처치곤란의 책들을 제 손으로 직접 버리는 괴로움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이 '독서의 괴로움'이 아니라 '장서(藏書)의 괴로움'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책 3만여권을 가지고 있는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이러다간 집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지혜롭고 건전한 장서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책장에 끼지 못한 책들이 바닥이며, 욕실이며, 계단 할 것 없이 곳곳에 범람하게 된 상황을 두고 그는 "대참사가 따로 없다"고 표현한다.
이밖에도 책에서 소개된 장서가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8년 세상을 뜬 평론가 구사모리 신이치는 목욕을 하려다가 욕실 문 앞에까지 쌓아둔 책더미가 무더지면서 그대로 욕실에 갇히기도 했다. 작가 나가이 가후는 1945년 도쿄대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적지 않은 장서가 있던 자신의 집이 유난히 다른 집보다 더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5년간 책 2만권을 사들인 한 직장인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컨테이너까지 빌리는데, 임대료가 많이 나가자 아예 본인이 직접 헌책방을 차리기도 한다. 저자의 경우도 만만치 않다. 그는 책 2000권을 처분해도 꿈쩍도 않는 책더미에 절망하고, 책을 팔아버린 다음 날 또 책을 사들이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저자는 일단 "집에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사는 지경"에 이르거나 "읽으려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해 서점에서 다시 사오는 일"이 생기면 독서공간이 슬슬 위험해지는 신호로 여기라고 충고한다. 책이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주변에 많이 쌓으면 '책 다이어트'를 해야 되는 시기인 셈이다. "대부분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
책에서 제시하는 적당한 장서량은 대략 500권이다. 그 이상은 버려야 한다. 다 읽은 책이 팔려 헌책방에 꽂히고, 그 책이 또 다른 독자의 손으로 넘어가 새 생명을 얻게 될 때 책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익살스러운 문체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제목대로 '장서의 괴로움'을 토로한다기보다는 '귀여운 엄살'로 읽힌다. 또 책에 소개된 다른 작가들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의 문화사에 대해서도 덤으로 알게 된다. 일본 작가 다니자와 에이치의 말에서는 '어떤 책을 소장할 것인가'에서 더 나아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간소하며 단아한 책에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내용이 감춰져 있다."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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