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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싫음에 관하여(117)

최종수정 2014.08.04 16:51 기사입력 2014.08.0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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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나는 대개 무덤덤한 편이다. 좋아도 속을 드러내놓고 좋다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싫으면 더욱 그렇다. 좋으면 말없이 좋아하는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뿐이고, 싫으면 가만히 마음을 접고 거리를 좀 물려 앉을 뿐이다.

체질에는 아무래도 음(陰)보다 양(陽)이 많은 듯 하여, 불같이 일어나고 화급하게 뭔가를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떠들썩하게 일을 하는 편이지만 금방 고요해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풀에 식는다. 덤덤히 오래 좋아하는 일은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오래 미운 채로 켕겨 있는 것은 잘 견디지 못한다.

감정이입과 역지사지는 내 어리석음을 깨우쳐온 오래된 스승이었다. 돌아다보는 시선에서 만나는 후회와 부끄러움은 내 오래된 동행자였다. 하지만 가끔 어떤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무섭게 차가워질 때가 있다.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엄격해질 때가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이 돋아나는 데에 일정한 원칙이 없지 않다. 나눠서 정리해보니 이렇다.


첫째, 앞말 다르고 뒷말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 누구나 그런 점이 일정하게는 있는 것이겠지만, 습관처럼 음지에서 타인을 저격하는 말을 일삼는 행위를 경멸한다. 그런 이가 눈 앞에서 겸손과 성실과 열정을 가장할 때 소름이 돋는다.
둘째, 언페어한 착취자를 싫어한다. 완력이나 직책이나 겁박이나 교지(巧知)로 이익을 취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이 없는 이를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셋째, 패거리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 집단의 내부에는 무조건적인 페이버를 주고 그 밖에 있는 이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 자를 미워한다. 사람이나 사실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잘못된 관점을 확대하여 세력으로 삼으려는 자를 혐오한다.

넷째 나는 은혜를 삼켜버린 이, 감사를 모르는 이와는 상종하는 것을 경계한다.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받을 것은 당연시하는 몰염치를 증오한다.

다섯째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을 보면 끔찍한 기분이 든다. 모든 잘못을 떠넘기면서 스스로에 대한 변명들을 발명해내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관계가 공유해야할 책임의 영역을 얼버무려버리는 습관의 소유자를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남에게 무해한 별난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 욕심많은 사람이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못난 사람, 시끄러운 사람, 변덕스런 사람, 사치스런 사람, 집요한 사람, 헤픈 사람, 슬픈 사람, 괴로운 사람, 어두운 사람, 나와 다른 편인 사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 남들이 까닭없이 싫어하는 사람을 덩달아 싫어하지 않는다.

몇 가지로 나눠서 싫음을 표현했지만, 결국 한 가지인 것 같다. 관계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 이를 싫어한다. 그 싫음은, 내게 돌아오는 반문이기도 하다. 너는 네가 그토록 원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가. 공자가 '예(禮)' 한 글자를 들고, 난세를 진정시키고자 했던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듯 하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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