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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최민식 "오로지 난중일기에만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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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감독의 역사관에 반했다...돌직구로 밀어붙이는 영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최민식은 "10년 전에 이 역할을 맡았더라면 아마 씩씩하게 잘했을 거다. 근데 지금은 정말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10년 전에 이 역할을 맡았더라면 아마 씩씩하게 잘했을 거다. 근데 지금은 정말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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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597년 9월15일.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명량해전 전날 난중일기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6년, 왜군은 기세등등하게 조선 앞바다를 넘보고 있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지레 겁을 먹고 수군을 해체하라고 명령한다. 병사들과 백성들에게는 독버섯처럼 두려움이 번졌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여전히 살고자 하는 병사들에게 그 유명한 '필사즉생'을 이야기한다.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는 답답한 상황이 일기에도 남겨져있다.
영화 '명량'에서 이 장면 촬영을 앞두고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52)은 "나 스스로가 극도로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60여분이 넘는 본격적인 해상 전투 장면에 앞서 이순신 장군의 각오와 결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위인전에서 수도 없이 접했던 저 유명한 대사를 실제로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부담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어떤 눈빛, 어떤 느낌으로 말할 지, 암담했다.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때 도와준 것이 부하 역할을 맡은 후배들이었다. '장군이 이제는 정말 죽으려 하는구나'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라. 너무나 정확한 감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을 보니 그제서야 나도 모르게 대사가 나왔다."

충무공 이순신을 다룬 영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최민식은 손사래를 쳤다. 괜히 잘못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작업일 게 뻔하다는 거였다. 전작 '최종병기 활'로 좋은 성적을 냈던 김한민 감독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형님, 이런 영화도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험난했던 역사를 영화로 만들어서 대중들과 소통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지 않을까요?'라는 김 감독의 말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소주만 먹지 않았어도...(웃음)" 그러면서도 최민식은 "일단 이 영화에는 요즘 유행하는 퓨전사극이나 현대식 재해석 이런 것들이 없다. 돌직구로 밀어붙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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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부는 벼랑 끝 상황에 처한 이순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인 수상 전투 장면이 진행된다. 12척(13척이라고 전해짐)의 배로 수백 척의 왜군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이야기는 사실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이다. 해협이 좁은 명량의 조류를 이용해 일자진으로 물결을 버텨가며 기다리는 전술과 왜군 용병 구루지마(류승룡 역)와의 심리전, 민초들이 회오리바다에 빠진 장군의 배를 끌어올리는 장면 등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명량해전 당일, 이순신 장군은 그날 밤 일기에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고 적는다.
최민식은 영화를 찍는 내내 "이순신 장군을 한 번이라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가 그 시절을 산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연기를 하는 것인데도 '아, 진짜로 한 번 보고 싶다'는 불가능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고 한다. 충무공에 관한 수많은 책도 있지만, 그건 모두 작가들의 해석일 뿐이라는 생각에 '난중일기'에만 의지했다. "충무공은 자신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던 임금에게 버림받았던 인물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인간적인 서운함이 왜 없었겠냐마는 그 와중에도 장계(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를 쓰지 않았나. 하다못해 직속 부하들도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두려움과 슬픔, 분노, 회한을 모두 극복하고 장군, 지휘관으로서의 임무를 실천에 옮긴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충무공의 이야기를 2시간 분량의 영화로 압축해야 한다는 게 최민식은 못내 아쉽다고 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분의 내면의 이야기와 민초들의 이야기를 더 다뤄서 4시간 정도 됐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다. 또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영화가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너무 기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경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서는 둘로, 셋으로 쪼개져서 싸우고 있는 모습도 똑같고. 이 영화를 통해서 충, 조국, 희생 등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치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논란이, 더 많은 해석이 나왔으면 좋겠다." 30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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