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단식 11일째…시민들 광화문 찾아 단식농성 동참

[집중진단-100일 虛送세월]"무엇이 두려워 진상규명 늦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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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하루 굶는 것도 힘든데 유가족들은 어떻게 열흘을 버티고 있을까. 내 아들, 딸이 왜 죽었는지를 아는 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절박할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와 하루 단식에 동참한 대학생 강동희(20)군은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알 방법은 없고 직접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째인 23일 오후 5시30분. 간간히 장맛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광화문 광장 천막 5개 동에는 유가족에게 힘이 되고 싶어 찾아온 시민들이 많았다. 친구 5명과 함께 이날 하루 단식에 동참한 최홍비(19)양은 "잘 먹고 잘 쉬어도 힘들 유가족들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정부가 진상규명을 늦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대생이라는 박노준(19)군은 "평소 사회에 관심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내 또래 애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는 걸 보면서 이번만큼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란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도 눈에 띄었다. 전날 하루는 단식에 동참하고, 이날은 서명을 받고 있다는 김가영(가명)씨는 "우리나라는 상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나라인데 국가가 상주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길거리로 내몰 수가 있냐"며 "유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봉사활동)밖에 없어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직접 광화문 광장을 찾지 못하는 직장인이나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SNS를 통해 '한끼 단식 동참'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유가족 옆에서 6일째 단식에 동참하고 있는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직장인들이나 아이 엄마들이 단식동참 인증샷을 많이 보내온다"고 말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 속에 유가족들은 열흘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14일 15명이 단식을 시작한 이후 유가족들의 동참이 하나둘 늘었다. "현재까지 총 21명의 유가족이 단식을 시작했으나 이중 6명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상태"라고 말하는 고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 위원장의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광장에 파견돼 있는 의료진들은 "진도에서부터 지금까지 100일 동안 심신이 지쳐있는 유가족들에게 단식은 매우 위험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한켠에 마련된 스크린에서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마지막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동영상들이다. 화면 속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배가 얼마만큼 기울었는지를 애써 웃으면서 설명하거나 해경이 구조하러 오고 있는 중이라며 하나같이 구조될 것을 믿고 있는 모습들이다. 퇴근길에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화면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봉사활동 중인 김가영씨는 "동영상이 상영되는 첫날, 이곳에서 단원고 어머니들이 대성통곡을 했다"며 "자식들 마지막 모습을 공개하는 부모 심정이 오죽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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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00일째인 24일 국회에서 숙식하며 농성 중이던 나머지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안향분향소에서 광화문광장까지 100릿길 빗속을 걷고 있다. 1박2일의 도보행진 출발 전날인 22일 국회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였다. 일부 단식자를 포함한 40~50여명은 매일 딱딱한 시멘트바닥 위에 돗자리를 깔고 밤을 지새고 있었다. 오전 내내 눈이 심하게 충혈돼 있던 한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는 "모기와 더위 때문에 간밤에 2~3시간 밖에 못잤다"면서도 "애들은 한달 넘게 그 안에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무렵 유가족 100여명을 태운 버스가 국회에 도착했다. 안산에 챙겨야 할 다른 가족이 있는 단원고 어머니들은 매일 국회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생존자가 단 한명밖에 없었던 2학년7반 유가족 20여명은 다음날 있을 40km 행진에 대비해 준비된 링거 맞기를 거부하고 피켓시위를 해야 한다며 광화문으로 나섰다. 고 이정인군 아버지 이창호(가명)씨는 "대행진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을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가 왜 이걸 하는지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이준우군 아버지 이수하씨는 "우리가 전국을 돌며 국민의 서명을 받았던 목적은 오로지 '철저한 진상규명' 이었다"며 "진상규명을 해야 애들한테 떳떳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이재욱군 어머니 홍영미씨는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양심' 문제"라며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지 않는 것은 국민들에게 제2의 세월호 티켓을 쥐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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