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재판이 지나친가, 국회의 정략 때문인가, 대통령의 인물관에 문제 있나, 제도가 잘못 됐나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뒤 '문창극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전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청와대는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 전 후보자의 역사인식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야권과 언론으로부터 사퇴압박이 강해지자 박 대통령은 혼란에 빠졌다. 중앙아시아 순방 중이던 지난달 18일 박 대통령은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귀국해서 여러 상황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재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임자'라고 밝힌 인물이 곤경에 빠지자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루고 사실상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유도한 것으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의 불안정한 인사검증시스템은 임명권자마저 수긍하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후보자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그 후보자가 일정 기간 자진사퇴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초유의 난맥상도 그대로 국민 앞에 노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문창극 사태 이후 '청문회 통과용' 총리를 찾아 헤맨 노력마저도 수포로 돌아간 무기력함에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는 다수의 인사를 접촉했지만 본인이나 그 가족이 반대해 고사한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인사 트라우마'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결국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사의를 표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는 황당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 총리가 사의를 표한 지난 4월27일 이후 60일간 진행된 이 같은 '인사논란'에 국정은 혼란을 거듭했다. 공직사회 개혁 등 세월호 참사 사후조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사실상 '올스톱(all stop)' 상태를 이어갔다. 총리 문제로 내각 구성이 지연되며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청와대와 여론 추이만을 지켜봐야 했다.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단행한 인사가 오히려 국정을 마비시킨 일련의 사태는 청와대 인사검증 방식과 여론검증, 인사청문회 제도 등 인사를 둘러싼 사회ㆍ제도적 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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