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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모기야 모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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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바탕 새벽 전쟁을 치렀다. 적의 습격은 짧지만 강렬했고 산발적이지만 끈적거렸다. 피만 빨아먹으면 그러려니 하겠다. 까짓것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문제는 강한 여운의 간지러움이다. 앵앵 거리는 소리는 또 얼마나 거슬리는지. 그 바람에 잠을 설쳤으니 전쟁은 불가피하다.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안방을 환하게 밝혔다. 어둠은 적에게 유리하다. 반격에 성공하려면 시야부터 확보해야 한다. 필살기도 손에 쥐었다. 뿌리는 모기약. 진압 작전 중 파편이 아군에게 튀는 것은 금물이다. 단잠에 빠진 마누라와 아이들의 얼굴 위로 이불을 덮으면서 시선은 천장과 벽을 더듬었다. 귀도 사방팔방 활짝 열어놨다. 걸리기만 해봐라, 생각하며 숨을 죽였다. 앵앵~. 드디어 사정권이다. 치이익~. 사살 완료.
장마철 습도와 기온이 오르면서 모기가 살판났다. 취침 전 목욕을 하고 모기약을 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새벽이면 한두 마리가 제방 드나들 듯 스물스물 침입한다. 하긴,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서 살았으니 입주권을 주장해도 무리는 아니다. 2억년 전 중생대로 거슬러가니 그 질긴 생명력이 그저 놀랍다. 강원도 부대 근무 시절, 장마철 훈련 중 모기가 군화를 뚫고 발가락을 물었던 오래된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놀란다. 북에서 넘어온 특수부대 모기일 거라고, 제대 후 술자리에서 수차례 폭로(?)했건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다산 정약용은 시(詩) 증문(憎蚊ㆍ얄미운 모기)에서 모기를 소재로 세태를 풍자했다. '모기야 모기야 얄미운 모기야/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血食)을 한단 말인가.' 여름밤 혈식을 즐기는 모기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에 빗대 꾸짖은 것이다. 하지만 유배 중인 그가 한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깔고 사는 신세,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다'며 자책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다산이 걱정하는 탐관오리는 여전히 넘쳐난다. 연일 터져나오는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뉴스는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불쾌지수를 높인다. 우리 사회가 겨우 이 정돈가, 분노하다가도 그들의 뻔뻔함에 허탈해진다. 그에 비하면 피를 빨아먹는 게 자연의 섭리인 모기와의 새벽전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모기보다도 생존력이 강한 인간의 탐욕이 더 끔찍한 것이다. 그런 탐관오리를 박멸하는 소독약은 어디 없나.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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