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이중섭 소재 연극 23년만에 다시 연출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지금도 독일이나 영국에 가면 40~50년 전 연극이 계속 공연됩니다. 옛날 것이라고 그냥 지나치는 건 옳지 않아요. 중요한 자산은 수용하고, 좀 촌스러운 것은 보완해서 옛 것을 새롭게 보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삶을 다룬 창작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연출가 이윤택의 손으로 다시 돌아온다. 초연 무대를 선보인 지 23년 만이다. 1991년 무대에 올린 '길 떠나는 가족'은 연극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갖가지 상을 휩쓸었다. 이후 다른 연출가의 손을 거쳐 재공연 되기도 했던 이 작품을 '오리지널' 이윤택 연출이 맡아 새로운 버전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나이 든 사람들을 우리 문화가 왜 이렇게 박대하는지 화가 나더라고요. 쓸 만한 것은 계속해서 새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문화 축적 아닌가요? 지금 우리 문화는 새 레퍼토리만 계속 찾고 묵은 작품은 해도 안 봐줍니다. 그게 이번에 '길 떠나는 가족'을 다시 하게 된 가장 큰 동기죠."
새로 선보이는 '길 떠나는 가족'에서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 극중 이중섭의 미술 작품들이 필요에 따라 등장하긴 하지만, 배우들이 각자 그 작품의 요소에 해당하는 오브제(소품)를 직접 들고 무대 위에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필요한 소품을 산에서 칡을 뜯어 제작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중섭 역을 맡은 배우 지현준은 무대에서 직접 이중섭의 소 그림을 그려야 한다.
"엄청나게 강한 힘으로 대사를 힘들게 '찍어 치는' 게 과연 지금도 가능할 지를 놓고 씨름하고 있죠. 대사를 '날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찍는 게 옛날 스타일이에요. 본받아야 할 부분이고요. 요즘 배우들은 그렇게 안 하죠. 이번 작품에서 보이는 화술은 지금 배우들 화술과 좀 다를 겁니다. 굉장히 폼이 나요. 하하하."
새로 이중섭을 맡은 배우 지현준을 두고는 "우리 극단(연희단거리패) 출신이라 이 친구를 안다. 그래서 캐스팅할 때 '지현준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끼가 아니라 지성과 타인에 대한 소통을 갖춘 배우가 아니면 이중섭을 연기할 때 절대 감동을 줄 수 없어서 지현준이 해야 한다고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암담한 시대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불사른 화가 이중섭의 삶을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은 오는 2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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