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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융합은 곧 시너지'라는 이데올로기

최종수정 2014.10.20 10:04 기사입력 2014.05.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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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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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초등학생일 때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첫째와 막내는 성격이 외향적이라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둘째는 좀 특이해서 내심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를 다닌 지 얼마 안 돼 담임 선생님이 상담하자고 불렀다. 둘째가 친구를 못 사귀는 것 같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가 불려간 이유를 짐작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엄마, 친구가 많아야 되나요?" 마치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단호히 대답해줬다. "아냐,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건 이데올로기야. 엄마 봐, 친구 없어도 잘 지내잖니" 지금은 중3이 된 이 녀석은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키워드로 떠오른 융합 역시 이데올로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융합연구의 근거는 한마디로 '1+1>2'다. 서로 다른 연구자, 기관, 분야, 아이디어가 만나면 그냥 기계적인 합이 아니라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질적인 연구 내용이나 결과만이 아니라 연구 장비 및 시설의 공동 활용을 통한 비용 절감 등 연구 행정 측면도 존재한다. 융합연구에 대한 정의는 그야말로 다양한데 학문 간의 결합으로서 융합은 영어로도 간학제적(interdisciplinary),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범학제적(pan-disciplinary),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연구 등 제각각이다.

융합의 형태도 한 분야의 난제를 다른 분야에서 이미 개발한 해결책이나 방법론을 응용해 풀어가는 저차원의 융합에서 문제 자체를 발견하거나 정의하는 연구의 시작 단계부터 여러 분야가 협력하는 고차원의 융합이 있다.

융합연구 명목으로 지원을 받는 연구 집단을 인터뷰하거나 이공계 연구자들과 융합연구를 해온 사회과학자로서의 경험을 돌아보면 융합연구는 종종 '1+1<2'다. 비슷한 개념이나 용어가 분야마다 미묘하게 달라 협력 연구자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부터 분야마다 연구 문화, 규범이 제각각이라 물과 기름이 섞여야 하는 고충, 연구사업 기관이 여럿이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과 연구비 집행처리가 더 복잡해지는 문제 등 단독 분야 연구보다 더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문제는 '1+1>2'가 그래도 '1+1<2'보다 많거나 아니면 '1+1<2'가 더 많아도 궁극적으로 연구 결과가 더 많이 나오면 좋을텐데 그것도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은 491개 공동협력연구 과제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연구 참여기관이 늘수록 오히려 논문이나 특허, 학생 배출 등 대부분 척도에서 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논문은 '1+1<2'의 경우를 '조정 비용(coordination cost)'이라고 일컫는데 앞서 든 예 이외에도 분야별 연구 평가기준의 차이, 공동 연구 노력에 대한 무임승차 경향 등 타협과 조정이 필요한 예를 여럿 들고 있다.

사실 과학적 지식이 어디까지가 물리학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화학의 영역이라고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듯이 어떤 연구가 융합이고 어떤 연구가 융합이 아니라고 단정짓기란 쉽지 않다.

학문 분야란 것이 근대 과학의 세분화, 전문화의 산물이고 또 지식의 본연적 총체성을 감안한다면 무슨 연구든 제대로 잘하는 사람은 이미 융합 연구자일터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이 모이면 뭔가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근거한 융합연구는 그야말로 과학기술계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다시 여담. 둘째 애가 어버이날에 또다시 엄마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카네이션에 꽃힌 카드에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다. "엄마, 아빠. 가짜 꽃처럼 오래오래 사세요." 진짜 꽃은 일찍 시드니까.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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