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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반야탕이 뭐죠(43)

최종수정 2020.02.12 10:26 기사입력 2014.05.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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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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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친구와 반야탕에 대해 실없는 논쟁을 벌였다. 술 먹는 일을 머쓱하게 여긴 중국의 승려들이 그 음식을 은어(隱語)로 반야탕이라 부른다는데... 그게 논쟁이 된 건, 반야탕이라 할 때의 ‘탕(湯)’이 적당한 말이냐에 관한 나의 시비 때문이었다. 탕이란 우리 상식으로는 뭔가를 끓이는 음식인데, 지혜를 담은 물이라 해야 할 것을, 아예 지혜를 삶아 버렸으니, 그게 어설픈 비유가 아니냐. 이런 내 말에, 탕이 반드시 끓인 음식이어야 하느냐, 그렇다면 목욕탕의 냉탕은 왜 있느냐는 반론. 그러자 나는 원래 끓인 것으로 출발한 탕이, 목욕하는 물로 쓰이면서 일반화되어 거기에서 ‘냉’탕이라는 기이한 말이 나왔다고 재반론. 뭐 음주승들이 급조한 말일진대 거기에 탕이 적합하냐를 따지는 게 우습다는, 문제 자체의 부정. 반야수라고 하면 음식의 맛이 안나니 ‘국’의 의미인 반야탕으로 했을 거라는 정황 논리 등등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그러다가 내가 인터넷에 <반야>라는 말을 쳐보니, 한 기구한 여인이 나타난다. 반야(般若)는 그녀의 이름이다. 어찌하여 그녀는 이 불교틱한 말을 이름으로 붙이고 있을까. 불교에서 권장하는 지혜를 갖고자 애쓴 여인일까. 반야는 600여년 전 그러니까, 고려 말의 바람과 물결 속을 살아간 사람이었다. 우리가 흔히 '요승'으로 기억하는 신돈의 첩이었다.
신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최근 들어 더 뜨거워졌다.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추진한 지식인으로 신돈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노정권의 개혁적 성향과 비교되면서 의미가 부각된다. 신돈은 공민왕의 뜻을 받들어, 당시 왕조와 나라가 끌려다니던 원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자주적 외교노선을 추구했고, 왕권을 위협했던 무인세력들을 제거하고 왕의 측근을 중용하는 정계개편을 단행했으며, 토지제도를 정비해 농민에게 전답을 돌려주었고 부패의 고리로 얽혀있던 과거제도를 혁파하여 다양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런 일련의 개혁조치들은 당시 민중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이후 왕비를 잃은 공민왕이 국정을 아예 돌보지 않게 되었을 때 신돈은 '국왕대행'으로 정치를 맡게되는데, 이에 대한 권신들의 견제와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는 그들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수도 이전을 기획한다. 이 일로 신돈은 급격히 왕의 신임을 잃게 된다. 이후 '반역 미수죄'로 처형당한다. 공민왕이 신돈을 기용했던 것은 권력의 '뿌리'를 갖지 않은 그가 공정무사하게 개혁을 단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민왕 스스로가 말년에 개혁을 포기하면서, 신돈의 꿈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 앞에 무너지고 만다. 그가 수도 이전을 건의한 것은 뿌리깊은 권신권력과의 처절한 싸움의 마지막 카드였으리라.

반야의 얘기로 돌아가자. 신돈이 잘 나가던 시절의 얘기다. 공민왕은 어느 날 총애하는 측근인 신돈의 집에 비밀리에 행차를 한다. 이때 신돈은 자기의 어여쁜 애첩 하나를 왕에게 ‘선물’한다. 그녀가 반야다. 이 날의 인연으로 반야는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는다. 물론 그녀가 신돈의 여인이었기에 그녀가 낳은 아이가 '반드시' 공민왕의 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공민왕의 쿼트(quote)로, 그가 이 아이를 자식으로 확신하는 대목이 두 번이나 나온다. (1)"내가 일찌기 신돈의 집에 갔을 때 그집 여종과 내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이를 경동시키지 말고 잘 보호하라."(신돈을 귀양보낼 때 왕이 그 측근에게 한 말) (2)"신돈의 집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데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까이 하였더니 이 아이를 낳았다."(신돈을 죽인 뒤 측근에게 한 말) 한편 이 아이가 신돈의 소생이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이후의 왕인 우왕과 창왕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성계 일파들은, 이 두 사람을 왕족이 아닌 신돈의 핏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한 역사조작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으므로 그냥 참조만 하자.

왕의 아이를 낳은, 신돈의 애첩. 이 복잡한 줄긋기 만으로도 그녀의 착잡한 운명이 짚인다. 그 아이가 그냥 반야의 아들로 숨어 살았더라면, 오히려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녀에게 저 핏줄에 대한 자랑과 거품 부글거리는 희망이 없었다면, 권력 주변의 살기(殺氣)와 음모들을 만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왕자로 봉해진다. 신돈이 공민왕의 신임을 잃고 수원으로 유배된 뒤의 일이다. 그가 섬겨온 주인을 잃은 반야는, 이제 벼락출세를 하게된 왕자에게 기대를 옮겼으리라. 그런데 공민왕은 자신의 부적절한 행각을 가리고 싶었던지, 이 왕자가, 죽은 궁인인 한씨의 소생이라고 공표한다. 생모 신분조차 인정받지 못한 반야는 얼마나 억울했으랴. 그녀는 아마도 왕자가 왕이 되기 만을 기다렸으리라. 1374년 반야의 아들은 우왕에 즉위한다.
마침내 내 세상이 왔다고 생각한 반야. 그녀는 밤중에 태후가 거처하는 궁으로 몰래 들어왔다. 그리고는 소리를 질러 “왕은 내 핏줄이오”라고 외친다. 태후는 궁을 순찰하는 병력을 시켜 그녀를 붙잡아 감옥에 가둔다. 그녀는 이후 산 채로 임진강에 던져진다. ‘왕의 비밀’은 이 은밀한 살인으로 지켜진다. 왕의 성은과 그것이 낳은 임신, 그리고 그 자식의 뿌리를 감추기 위해 죽임에 처해지는 반야의 운명을 살피노라면, 그의 이름이 ‘지혜’인 것이 새삼 씁쓸하다. 취한 정신처럼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채 휘말려 돌아간 그녀의 생이야 말로 독주를 뒤섞은 한바탕의 어질어질한 <폭탄주 반야탕>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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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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