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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두향은 눈물을 빗물처럼 쏟아낸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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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82)
[千日野話]두향은 눈물을 빗물처럼 쏟아낸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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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께서 두향의 심신을 걱정하셨나 보군요. 하기는 당신(當身)께서도 몸이 약하여 내내 고생을 많이 하셨기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예.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 많았습니다. 신선들의 아침 기본 운동이라는 팔단금(八段錦)을 가르쳐주셨고, 수식법(數息法ㆍ숫자를 세며 하는 호흡법)에 대해서도 일러주셨지요. 또 중화탕(中和湯)에 대해서 설명하실 때는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거짓 없는 마음(思無邪)이라는 약재, 착한 일 하는 마음(行好事)이라는 약재, 속이지 않는 마음(莫欺心), 본분에 충실함(守本分), 질투 안하는 마음(莫嫉妬), 간사하고 교활함을 없앰(除狡詐), 하늘의 뜻에 따름(順天道), 목숨의 한계를 아는 것(知命限), 맑은 마음(淸心) 따위의 약재 30가지를 섞어 조제하는 것이더군요.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화기환(和氣丸)이라는 알약도 있는데, 이것은 참을 인(忍)으로 만든 것으로 입을 다물고 침으로 녹여 천천히 씹어 삼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나 또한 저 도인법(導引法)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대는 제대로 스승을 만났구료. 활인심의 효험이 있었습니까?"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추스르는 데는 그 이상의 비방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리움을 진정시키는 일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그분이 생각나고 시를 읊을수록 그분이 떠올라 강선대가 온통 여인의 사뇌(詞腦)로 가득찬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아. 가슴이 답답하오. 살아서 다시 만나지 말자는 맹약이라니…. 이런 기구한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고려여인이 읊은 시가 이런 상황과 비슷한 게 있었는데…. 오늘의 일로 바꾸면 이러하겠군요."
단양강수접은하(丹陽江水接銀河) 상유누대시첩가(上有樓臺是妾家)
위시퇴군천상객(爲是退君天上客) 시래기대일승사(時來幾待一乘?)).

단양강물이 은하에 닿아,
그 위 강선대에 소녀의 집이 있사옵니다.
퇴계군이 천상의 객이 되면,
그때가 되어 여기 한번 올라오시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요.

그때 마침 천둥이 우르릉 울리고 바람벽이 떨었다. 두향은 마침내 눈물을 빗물처럼 쏟아낸다. 공서는 그녀를 달래려다 더욱 크게 터뜨리고 만 셈인지라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사월이의 소리가 들렸다.

"아씨, 아씨. 밖에 손님이 오셨는데요."

방문을 여니, 사립문 밖에 장대비를 맞고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토정 이지함이고 하나는 그 조카인 이산해였다. 두향이 눈물을 닦고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어서,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이리 비오는데 누추한 곳으로 행차시라니…."

큰 삿갓을 쓴 이지함과 도롱이를 차려 입은 산해가 비를 털며 안으로 들어온다.

"앞서 오신 객이 계셨군요."

이지함은 공서를 보며 반갑게 웃음을 짓는다.

"뒤늦게 두향이 기적(妓籍)에서 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소이다."

공서의 말에 토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제야 들었습니다. 사또와는 결별을 하셨다고 하니 상심이 클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향은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렇듯 천한 것에 마음을 써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저는 다만 이 모든 것을 운명이라 여기려고 합니다. 오늘 이 귀한 공자(公子)께서도 방문을 하여 주셨으니, 평생 잊지 못할 듯합니다."

두향이 산해에게 그렇게 인사를 하자, 산해가 말했다.

"단양이 비좁고 척박한 땅이기는 하지만, 산수(山水) 속에 영기(靈)가 있어 두향 같은 빼어난 미색을 낳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자태도 아름답지만 문장이 사뭇 기이하고 경(經)이 가득 차서 저 또한 지란(芝蘭)의 교(交)를 맺고 싶은 그런 분입니다."

열 살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숙연하고 담담한 말투에 두향은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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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
일러스트 이영우 20wo@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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