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날 오후 다섯 시 반 하덕마을 옛날 구판장 앞 작은 마당에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씩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나타나신다
어깨에 메거나 작은 손수레에 담아 끌고 오시는 거물 망태와 보자기에는
봄물을 잔뜩 들여 마신 찻잎들이 가득 담겨있다
어머니들은 깔딱 숨 쉬시면서 반쯤 구부러진 허리를 폈다가 구부려다가 반복하신다
한 참 만에 작은 트럭이 연기를 내 뿜고 나타나더니
사오십 명 쯤 되는 어른들은 초등학교 일학년 어린이들처럼
트럭 꽁무니를 향하여 두 줄을 서신다.
하나 둘씩 저울에 망태를 맡기니 옛날 식 노란 돈 봉투 하나씩 손에 쥐여지고
지남철에 철가루 빨려 들어가듯 소리 없이 그림자 내려앉은 골목길로 빨려 들어가신다
곡우를 지나면 찻잎 값은 어머니 몸무게만큼이나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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