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도 홀로 보며 즐기고 싶어하고, 달빛도 매화가지 끝만 편애하는 것은, 그것 또한 하나의 사랑이기에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다른 것과 섞이는 것에 대한 혐질(嫌嫉ㆍ혐오와 질투)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런 것 같소이다. 어찌 그런 본능의 감정이 전혀 없겠습니까?"
"허어, 그랬더니요?"
"전목은 시를 지어 금란에게 보냈습니다."
듣자니 그대가 단월역장에게 일편단심이라 하더군
깊은 밤마다 역(驛)을 향해 날아가는가
언제 삼릉장(죄인을 추궁하는 세모 방망이) 들고 가서
약속했던 월악이 무너졌느냐 되물으리라
聞汝便憐丹月丞 夜深常向驛奔騰(문여편련단월승 야심상향역분등)
何時手執三稜杖 歸問心期月嶽崩(하시수집삼릉장 귀문심기월악붕)"
"허허, 점입가경입니다."
"그랬더니 금란이 답시를 보내왔습니다.
북쪽엔 전목이 있지만 남쪽에는 단월역장님도 계시네용
소녀의 마음은 날아다니는 구름같이 정처가 없으니껭
맹서가 깨지는 것처럼 산이 변한다면
월악산은 지금껏 여러 번 무너졌겠지롱
北有全君南有丞 妾心無定似雲騰(북유전군남유승 첩심무정사운등)
若將盟誓山如變 月嶽于今幾度崩(약장맹서산여변 월악우금기도붕)"
"허허허허. 공서는 정말 못 말릴 이야기꾼입니다."
퇴계가 파안대소했다.
"금란지계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니, 화접(花蝶)이 저마다 꾸는 꿈을 굳이 상대에게 강요하는 일이 우스운 것입니다. 나비가 꽃을 버리고 떠나가듯 꽃 또한 다른 나비를 맞는 저 일을 어쩌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상대를 어쩌려고 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의 주제넘은 월경(越境)을 단속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사랑을 저런 냉소로만 대한다면 처음부터 사랑을 할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월악산도 솟아 있어야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니, 월악산을 쌓는 일은 공을 들이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겠지요."
"아아, 사또의 말씀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고려 정지상이 남긴 '단월역'이란 시에도 각억야심운우산(却憶夜深雲雨散)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단월역에서 서월(西月)이란 기생과 실컷 술 마시고 놀다가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 시인이 읊은 것입니다. 문득 어젯밤을 떠올리니, 그 좋던 운우지정은 다 사라져버렸네. 그렇게 탄식한 뒤 새벽 푸른 하늘에 외로운 달이 작은 누각의 서쪽에 서월(西月)로 걸려 있는 (碧空孤月小樓西) 풍경을 바라보며 까닭 없는 허탈감에 젖지요. 환락에는 늘 이런 쓸쓸한 그림자가 있게 마련인 듯합니다."(*운우지정은 선녀가 왕을 만나 즐긴 뒤 앞으로 그의 조운모우(朝雲暮雨)가 되어 늘 드리우고 적시며 사랑하겠다고 언약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어찌 꽃에게 사랑을 구하랴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