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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토정이 만난 '영덕대게의 화신'(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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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퇴계의 사랑 두향(55)

[千日野話]토정이 만난 '영덕대게의 화신'(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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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는 아직 미숙하고 배워야할 것이 많으나, 넓은 도량과 장대한 기상을 가졌으면 하는 아비의 바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심하니 작은 것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심지가 굳었으면 합니다. 숙부 되는 토정(이지함)이 가르치고 있으니, 천하를 주유한 이의 기운이 담기는 성취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지번의 말에 퇴계 이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지함에게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천하를 주유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소이다."

"보잘 것 없는 떠돌이의 객담에서 얻을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기운 좋은 바위 아래 앉으니 장렬한 기상이 동하여, 동해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 자락을 전할까 합니다."

"아아. 듣고 싶소이다."
"일전에 장사를 하러 그곳에 갔었는데, 한 어촌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였습니다.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다른 나그네 하나가 들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는데, 집주인과 마주 앉아 동해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기이한 이야기라 함은 무엇입니까?"

"동해 일대의 사람들은, 반도 내륙의 사람들과는 달리 대게를 신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대게는 뭍에서 사람들을 돌보다가 성류굴과 같은 큰 굴을 통하여 바다밑으로 나아가 용궁에 도달한다고 하였습니다. 대게를 한자로 해(蟹)라 하는데 그것은 하늘의 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대게는 바다밑에 살지만 사실은 해가 낳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열기를 받으면 붉어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라 합니다. 어촌 사람들은 대게가 동해용왕임을 믿고 있더군요. 풍랑을 재워주고 물고기를 많이 잡히도록 해달라고, 그들은 대게신에게 빈다 하였습니다."

공서가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성류굴에 거대한 대게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허튼 소문만은 아니로군요. 어부와 얘기를 나누는 노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날 밤 하늘은 청명하고 물결은 잔잔하여 바람이 한 점도 없었는데, 한밤 중에 그 노인이 밖으로 나가서 잠시 거닐더니 크게 놀라면서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큰 변이 닥치고 있소.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어부는 맑은 하늘에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노인은 다시 재촉을 하였습니다. '얼른 모든 짐을 꾸려 얼른 몸을 높은 곳으로 옮기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일이 일어나 마을이 만경창파 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서둘러 피하지 않으면 마을 사람 모두가 물고기 신세가 되고말 것입니다.'"

"그랬더니요?"

두향이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집주인은 이 말을 들으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여전히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이 헛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부디 뒷산 맨꼭대기로 잠깐만 피신해 계십시오. 조금 뒤에 아무 일이 없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 무어 해로울 것이 있겠소이까. 아직도 미심쩍기만 하거든, 재산은 놔두시고 사람들만 일단 옮기시는 게 어떻겠소?' 거듭 청하자, 주인은 마지 못해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저 또한 그의 말을 따라 뒷산으로 헐레벌떡 올랐지요. 봉우리까지 못 미쳐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제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이쯤이면 피할 수 있지 않을지요?' 그랬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공력이 있어 이미 무엇인가를 보시는 듯 하오. 그쯤이면 잠깐 놀랄 수야 있겠지만, 그대는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두향이 급한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지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닭이 울 때 쯤이었습니다. 과연 바닷물이 갑자기 넘치더니 물결이 하늘까지 치솟아 몰려왔습니다. 산으로 달려오던 노도(怒濤)가 제가 앉은 바위 무릎까지 와서 출렁거렸습니다. 마을은 순식간에 잠겼습니다. 성난 파도는 날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 계속되다가 물러갔습니다."

"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퇴계도 놀라며 물었다.

"예. 어떻게 노인이 그걸 알았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용궁에서 온 대게의 화신인가 싶기도 하였고요. 그래서 제가 그분께 절을 하고 제자가 되어 배우기를 청했습니다. 그분은 고개를 흔들면서 '우연히 알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는 게 없소이다'하며 청을 거절하였지요. 어디에 사는지를 물었더니 바다 쪽에 보이는 웅크린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다음날 그집에 가보았더니, 집이 아니고 집채만한 바위였습니다. 노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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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사인암 바위바둑판 앞에 앉아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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